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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속에 묻힌 문명의 열쇠, 로제타석이 해독되기까지의 1600년 기다림

1799년 발견된 로제타석은 2000년 이상 잊혀있던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한 돌멩이가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깨웠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탐색해봅시다.

김진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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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속에 묻힌 문명의 열쇠, 로제타석이 해독되기까지의 1600년 기다림

역사의 흐름을 보면 가끔 놀라운 일이 일어나죠? 바로 작은 돌 하나가 인류의 지식을 되살리는 그런 순간 말입니다. 1799년 7월 15일, 이집트 나일강 어귀의 로제타라는 작은 도시에서 그런 기적이 일어났어요.

요새를 지으려다 만난 문명의 비밀

당시 나폴레옹의 원정군 장교였던 피에르 부샤르가 요새의 주춧돌로 쓸 돌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로제타석입니다. 로제타석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 때에 만들어진 검은색 비석이었거든요. 다행히 이 돌을 실은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그 가치를 단숨에 알아봤어요. 당시 부샤르는 이 비석을 요새의 주춧돌로 쓸 생각이었지만, 프랑스군을 수행하던 고고학자들이 이를 보고 기겝하며 받아놓았죠.

왜 이 돌이 그토록 소중했을까요?

로제타석의 특별함은 그 위에 새겨진 글에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어로 된 법령이 위에서부터 신성문자,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의 세가지 문자로 번역되어 쓰여 있는 화강암이었거든요. 이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같은 내용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답니다.

2000년 이상 아무도 읽을 수 없던 이집트 상형문자. 하지만 그리스어라면? 학자들은 그리스어에서 출발해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1600년의 침묵을 깨운 두 천재

이렇게 세상 앞에 나온 로제타석이었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1801년 프랑스군이 영국군에 항복하면서 로제타석은 영국군 손에 넘어갔고, 1802년부터 지금의 대영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기 시작했거든요. 다행스럽게도 처음 발견한 프랑스에서 가치를 인식하고 탁본 및 복사본을 미리 만들었고, 그 덕분에 프랑스 고고학자 샹폴리옹도 로제타석의 내용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어요.

1814년 영국인 토마스 영이 이집트 민중문자의 해독을 끝냈고, 이집트 상형문자 해석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해독은 더 기다려야 했어요. 그때 나타난 인물이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에요. 1822년부터 1824년까지 샹폴리옹이 이 일을 확장하여, 로제타 돌을 해석했거든요.

샹폴리옹은 그리스어와 콥트어를 읽을 수 있었으므로 그것부터 해석하였고, 테두리가 둘러진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왕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었어요.

'음성 문자'라는 놀라운 발견

하지만 정말 중요한 발견은 따로 있었습니다. 샹폴리옹은 이집트 상형문자가 음가를 나타내는 표음문자와 뜻을 표현하는 표의문자, 그리고 그림문자 등 세 가지가 복합돼 이뤄졌다는 사실을 밝혀냈거든요. 이건 정말 혁명적인 발견이었어요. 학자들은 상형문자를 온전히 그림 문자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들

로제타석의 이야기는 단순한 고고학 뉘스가 아니에요. 이건 우리 시대에도 의미 있는 물음을 던집니다.

첫째, 지식은 누구의 것인가? 로제타석 반환 운동이 로제타석 상형문자 해독 200주년을 맞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이집트 유물부 장관을 지낸 저명 이집트학자 자히 하와스 박사가 온라인 청원사이트에 올린 청원에는 한 달 만에 10만 9천여 명이 서명했어요. 지금까지 로제타석은 대영박물관에 있죠. 원산지로 돌려보내는 게 맞을까요?

둘째, 우리는 여전히 읽지 못하는 문명들이 있지 않을까? 지구 곳곳에는 아직도 인류가 해독하지 못한 고대 문자들이 잠들어 있어요. 로제타석 같은 우연한 발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셋째, 작은 것의 가치를 아는 것. 한 돌멩이가 고대 문명 전체를 깨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나요? 우리가 지나쳐 가는 것들 중에 혹시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게 있을지도 몰라요. 역사는 우리에게 주의깊게 살아갈 것을 권유합니다.


기자: 김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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