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은 범죄다: 아돌프 로스와 오스트리아 건축 혁명, 모더니즘이 빈을 바꾸다
황제도 미워했던 '눈썹 없는 건물' 로스하우스. 분리파의 화려함과 맞서 현대건축의 기초를 다진 아돌프 로스의 철학과 그가 남긴 오스트리아 건축물들을 통해 20세기 초 빈의 위대한 전환을 이해한다.
'장식은 범죄다': 황제도 혐오한 건축가, 아돌프 로스와 오스트리아 모더니즘의 탄생
혹시 오스트리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빈의 미하엘 광장을 지나갈 때 꼭 한 번 멈춰 서서 하나의 건물을 바라봐 주세요. 화려한 바로크와 고딕 건축물들 사이에 흙색 외벽으로 소박하게 서 있는 6층짜리 건물이 눈에 띌 거예요. 그것이 바로 아돌프 로스가 설계하여 1912년에 완공된 로스하우스로, 빈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주요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 빈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거든요. 당신은 상상이 되나요?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는 로스하우스를 너무 싫어해서 광장을 마주 보고 있는 호프부르크 궁전 창문에 커튼을 닫아두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왕족도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니, 얼마나 당시의 미적 기준과 충돌했는지 짐작이 가시죠?
'눈썹 없는 건물'이라 비난받다
정형화된 창문의 배열, 스터코 장식과 차양의 부재가 특징인 외관으로 인해 '눈썹 없는 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당시 신문들은 이를 '부적절한 알몸', '빈의 맨홀', '똥더미'라고까지 표현했어요. 상상해 보세요—19세기 말 빈은 장식의 나라로, 건물 안과 밖이 모두 온갖 장식으로 가득하고, 식기류와 실내등, 심지어 가구의 손잡이까지 눈길 닿는 곳이 모두 예술이었다. 그런 시대에 로스가 던진 건물은 정말 혁명적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로스가 공청회에서 자신의 설계를 방어하고, 논란을 완화하기 위해 창문에 화분대를 추가하기로 합의한 뒤에야 공사가 재개될 수 있었다. 현대건축의 선구자도 한 번의 외면을 피할 수 없었던 거예요.
"장식과 범죄"—아돌프 로스의 철학
그렇다면 로스는 정말 왜 이 '못난' 건물을 설계했을까요? 답은 그의 유명한 에세이 제목에 담겨 있어요. 로스는 〈장식과 범죄(Ornament and Crime)〉라는 에세이 및 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이 글에서는 장식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로스의 철학은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었어요. 미국을 방문하여 루이스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철학을 담은 시카고 학파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 건축이란 권력과 부를 과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을 담아내는 실용적인 공간이어야 했던 거죠.
로스하우스의 모더니즘 디자인은 역사주의와 분리파 건축의 꽃무늬 장식 모두와 대조를 이룬다. 당시 주류였던 빈 분리파는 '세기마다 고유한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모토로 1897년 결성되었으며, 생활과 기능을 연결한 새로운 조형예술의 창조를 목표로 삼았던 운동이었는데요. 로스도 같은 목표를 추구했지만, 방식은 극과 극이었던 겁니다. 분리파가 화려한 금색과 꽃무늬로 미래를 그렸다면, 로스는 단순함과 실용성으로 미래를 외쳤던 거죠.
구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다
로스하우스는 빈에서 선구적인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었으며, 이러한 건축 양식은 넓은 내부 공간과 제조 및 판매 구역의 합리적인 배치를 가능하게 했다. 외관이 단순하다고 해서 내부가 허술한 것은 아니었어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자재를 사용한 점이 특징이며, 파사드의 아래쪽 상업 부분은 에우보이아산 녹색 치폴리노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이것이 로스가 주장했던 모더니즘의 진정한 의미였어요. 장식을 제거한다는 것은 품질까지 포기하는 게 아니라, 재료의 본질과 구조의 정직함을 드러내는 것이었거든요. 로스는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로 건축과 디자인 분야의 모더니즘에 대한 비평 및 이론적 기여를 했으며, '라움플란(공간 계획)'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어요. 이는 프라하의 뮐러 빌라 설계에서 잘 드러난다.
빈이 받아들이기까지
1987년 라이파이젠은행이 이 건물을 매입하여 전면적인 개보수 공사를 시작했으며, 1990년 10월에 완료되었다. 75년이 지난 후에야 빈은 로스의 건축을 제대로 복원하려 했던 거죠. 로스 하우스는 완공 당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크게 실망했으나, 현재는 오히려 실용적인 디자인의 건축물로 평가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역사가 로스의 손을 들어줬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대 건축—미니멀한 아파트, 기능적인 사무실, 깨끗한 라인의 공공건물들—모두 로스가 주장했던 철학을 따르고 있거든요. 당대의 황제가 가장 혐오했던 건축이, 100년을 지나 모든 건축의 기본이 되어버린 겁니다.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빈 모더니즘'을 보는 법
오스트리아 여행을 갈 때 당신은 두 가지 미학을 동시에 경험할 거예요. 하나는 합스부르크 왕조가 남긴 화려한 궁전들과 바로크의 우아함. 그리고 또 하나는 로스가 외친 현대성의 진실함이에요.
로스하우스 건너편 호프부르크 궁전의 웅장함을 보고, 다시 로스하우스의 차분함을 바라보세요. 그 대비 속에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가 겪었던 가치관의 충돌과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왕족의 권력이 상징하는 전 시대의 미학과, 인간의 삶 자체를 담으려던 새로운 미학의 대면 말이에요.
2000년대 초, 지하층에 오스트리아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전시 및 컨퍼런스 시설인 디자인존 로스하우스가 개관했다. 오늘날 로스하우스는 은행이자 전시공간이면서, 동시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건물이 되어 있어요.
혁신은 언제나 험난한 법이죠. 하지만 역사 속에서 웃음 지었던 자들은 결국 잊혀지고,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 자들의 목소리만 영원히 울려 퍼집니다. 로스하우스에 서서 이 건물의 담담한 표정을 바라볼 때, 당신도 그 시대 로스가 외쳤던 외침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글쓴이: 최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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