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켓' - 12세기 영국의 '충절 대결' 영화로 다시 본 왕과 대주교의 비극
1964년 영화 '벡켓'은 친구이자 충신 토마스 벡켓이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된 후 신념을 택해 왕에 맞서는 실제 역사를 다룬 명작 드라마이다. 충절의 의미를 묻는 이 영화를 영주 이야기와 함께 살펴본다.
벡켓(Becket, 1964) - 왕과 친구 사이의 불가능한 충절
"충절의 도시 영주"라는 뉴스가 울려 퍼진 오늘, 우리가 다시 봐야 할 영화가 있다. 1964년 피터 글렌빌 감독이 만든 영화 '벡켓'은 장 아누이의 1959년 연극을 각색한 작품으로, 영국의 헨리 2세 왕과 그의 친구이자 대주교인 토마스 벡켓 사이의 격렬한 관계를 다룬다.
영화는 리처드 버튼이 토마스 벡켓 역을, 피터 오툴이 헨리 2세 역을 맡았으며, 존 길굿이 루이 7세 역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극이 아니다. 충절이란 무엇인가, 신념과 의무 사이에서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실제 역사 이야기
영화의 시작은 극적이다. 헨리 2세는 1154년부터 1189년까지 영국을 통치했으며, 영화 오프닝에서 그는 자신의 옛 친구 토마스 벡켓의 무덤 앞에 참회하기 위해 캔터베리 대성당에 들어선다. 이 장면은 미래를 암시한다.
영화는 토마스 벡켓이 왕 헨리 2세의 자문관이자 동반자였으며, 헨리는 벡켓을 '대법관'에 임명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친분 있는 자를 이 자리에 두려 했다고 보여준다. 헨리 왕은 술 마시는 것과 사냥, 농민 여인 추행을 더 좋아했고, 벡켓은 이 모든 방탕함을 처리하면서 왕의 궁정을 운영했다.
그때였다. 캔터베리 대주교 자리가 공석이 되자,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간섭에 좌절한 헨리 왕은 자신의 친구 벡켓을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하려 했다. 하지만 벡켓은 영적 변화를 겪었고, 자신의 직책을 진지하게 여겨 그 책임을 다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벡켓이 성직자를 죽인 혐의로 길버트 남작을 파문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그린다. 벡켓은 법정에서 "길버트는 성직자를 불법으로 감금했고, 성직자가 도망치려 하자 그의 부하들이 그를 죽였다. 이는 살인과 신성 모독의 죄이며, 길버트가 참회나 용서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부터, 모든 기독교인들의 공동체로부터 분리한다"고 선언한다.
더 비극적인 순간은 영화의 절정이다. 무장한 자들이 대성당 문 앞에 나타나자 형제 필립은 "경하, 무장한 자들이 문 앞에 있습니다"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벡켓은 "저녁 기도할 시간입니다. 저녁 기도 중에 문을 잠금니까?"라고 대답하며 문을 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신성한 예배를 위해 있어야 합니다."라는 그의 대사가 울린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 벡켓은 대성당에서 살해당한다. 영화의 막(epilogue)에서 헨리 왕은 자신의 채찍질 후 벡켓을 살해한 자들이 발견되어 정당하게 벌받을 것이라 선포하고, 대성당 밖의 군중들 앞에서 토마스 벡켓이 성인으로 시성될 것이라고 공식 선포한다.
영화와 실제 역사의 차이점
흥미롭게도 영화는 몇 가지 역사적 각색을 했다. 영화에서 벡켓은 노르만계에서 앵글로색슨계로 변화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실제 토마스 벡켓은 노르만인이었다. 장 아누이는 19세기 기록을 바탕으로 벡켓을 색슨인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또한 영화는 헨리와 토마스 벡켓의 나이를 거의 동등하게 묘사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둘 사이의 나이 차이가 15년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거의 세대 차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변화는 두 남자 사이의 우정과 균형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영화적 선택이었다.
역사적 배경도 약간 다르다. 영화에서 헨리 왕은 프랑스의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한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회의 조력을 원했으며, 교회는 이전 군주들로부터 받은 세금 면제 특권을 질기게 지키고 있었다. 이것이 헨리가 벡켓을 대주교로 임명한 배경이다.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
첫째, 이 영화는 충절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장 아누이 특유의 드라마처럼, 이 영화는 두 거인 같은 인물을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이념적 균열로 대립시킨다. 벡켓은 왕에게 충성해야 하는 신하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에게 충성해야 하는 대주교이다. 영주 같은 도시의 충절도 이와 비슷한 갈등을 담고 있다 - 국가에 대한 충절과 개인의 신념 사이의 선택이.
둘째, 두 배우의 연기가 너무나 훌륭하다. 벡켓은 '최고의 각색 대본상'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으며, '최고의 작품상', '최고의 감독상', '최고의 남우조연상', 그리고 두 번에 걸친 '최고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버튼은 벡켓을, 오툴은 헨리 2세를 맡아, 젊은 날부터 신뢰했던 친구이자 최고의 조언자인 토마스 벡켓과의 복잡한 관계를 탐색한다.
셋째, 신념과 권력의 충돌이라는 영원한 주제를 다룬다. 영화는 여전히 시의적절하며,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대한 진지하고 명상적인 담론으로 넘친다. 오늘날 권력 관계와 신념의 충돌이 여전히 현재형인 우리 사회에서, 800년 전의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이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이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친구와의 우정, 왕과의 충성, 그리고 하느님 또는 진리에 대한 충절 - 어느 것이 가장 높은가? 벡켓과 헨리 2세는 이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내린다. 그리고 그 다른 답이 비극을 초래한다.
역사 팁: 실제 토마스 벡켓은 1170년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네 명의 기사에게 살해되었다. 헨리 왕이 "이 성가신 성직자를 누가 없애줄까"라는 분노에 찬 말을 했고, 세 명의 기사가 이를 말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벡켓은 곧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그의 무덤은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헨리는 죽기 전에 벡켓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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