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과 헌재의 첫 충돌, 재판 지연이 기본권 침해인가
서울중앙지법이 헌법재판소의 재판 지연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를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법원과 헌재 간 견제의 시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법원, 헌재 재판 지연에 '기본권 침해' 검사 나선다
사법부 내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재판 지연을 문제 삼아 기본권 침해 여부를 직접 심사하겠다고 나선 거거든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0부(수석부장 전보성)는 17일 "헌법 107조에 근거해 헌재의 부작위 처분(재판 지연)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의 심사를 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4년째 계류 중인 사건, 문제의 발단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사건입니다. 재판부가 문제 삼은 사건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를 받는 통일TV 대표 진천규씨의 사건이며, 진씨는 2018년 8월 인천공항을 통해 북한 서적과 영상자료, 노동신문 등을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채 반입한 혐의로 2020년 10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진씨는 1심에서 남북교류협력법 13조1항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됐고, 이후 2022년 6월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이제 4년이 흘렀는데 헌재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거죠.
"헌재도 헌법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
법원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재판부는 "모든 국가권력이 헌법의 구속을 받듯 헌재도 헌법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이번 조치는 법원이 헌재의 재판 관행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 헌재의 부작위 처분이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법원의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최초의 의견 요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헌재, 강한 반발로 맞대응
하지만 헌재는 즉시 반발했습니다. 헌재 측은 법원 요청이 법적 근거를 갖추지 않았다며 반발했고 요청에도 회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헌재 관계자는 "법원이 해당 헌법소원의 당사자가 아니기에 의견을 요청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더 나아가 헌재 관계자는 "법원이 4년 동안 판결을 안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항소심 지연의 책임이 법원에 있다는 주장이죠.
재판소원 제도가 촉발한 양 기관의 대립
법원이 전례 없이 헌재의 재판 지연을 심사하겠다고 나선 데는 지난 3월 시행된 재판소원 제도가 배경으로 꼽힙니다. 이전에는 법원 판결에만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헌재 결정까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된 거거든요.
하지만 이것이 양 기관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헌재는 8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심리불속행 등 법원의 절차·제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법원 내부에선 재판소원으로 일사부재리(동일한 범죄에 대해서 다시 처벌하지 않는다)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이 갈등의 핵심은 누가 누구를 감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있습니다. 헌재는 재판 지연이 헌법 107조 2항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법원이 기본권 침해를 심사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논리도 일리 있습니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분명한 헌법상 기본권이거든요. 헌재가 4년이나 결정을 미루고 있다면, 그것이 정말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재판부는 지난 12일 헌재에 '헌법재판 지연 사유에 관한 의견요청서'를 발송하고 한 달 이내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요청서에는 심사 진행 단계 및 지연 사유, 주심 재판관과 보고연구관 사이 심리 경과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헌재가 응할지, 법원과 헌재 간 이 대립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어떤 기구든 기본권 침해는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국가권력이 헌법의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원칙이 다시금 확인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기자: 김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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