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문화 저항 - 식민지배 속 흔들리지 않은 정신의 가치

2017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은 일본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계략 속에서도 신념을 지킨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의 실화를 다룬다. 영화 속 재판정에서 펼쳐진 박열의 저항을 통해 문화 이념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의 의미를 살펴본다.

박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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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 - 죽음도 불사한 정신의 저항

2017년에 개봉한 '박열'은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열과 그의 애인이자 아나키스트였던 가네코 후미코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장률 감독이 아닌 이준익 감독의 연출로, 박해일 대신 이제훈, 최희서, 김인우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2017년 6월 28일에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개봉되어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영화입니다.

영화 속 실제 역사 이야기

당의 이념을 수호한다는 뉴스 제목이 떠오르네요. 박열 영화는 정확히 이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의 역사적 비극에서 시작됩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6천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되며,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관심을 돌릴 화젯거리가 필요했던 일본내각은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합니다. 영화는 이 부당한 상황에서 박열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일본 도쿄의 인력거꾼으로 일하며 핍박 속에 살아가던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은 다른 조선 동지들과 함께 폭탄테러 투쟁 계획을 벌이고 있었으며, 잡지에 게재된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고 감명받은 가네코 후미코는 그를 직접 찾아가 동거하며 투쟁하자는 제안을 하고 둘은 동거 계약을 맺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재판정입니다. 박열과 후미코는 형무소로 연행되어 검사의 취조를 받다가 폭탄 입수 계획이 발각되자, 이를 두고 히로히토 황태자에게 폭탄을 날리려 했다고 고의로 자백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살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박열은 일본의 계략을 꿰뚫고 있었고, 자신이 '배우'가 되어줌으로써 조선인 대학살의 진실을 역으로 폭로하려 했던 것입니다.

영화에서 박열이 재판정에서 입은 옷과 태도는 특별합니다. 그는 조선의 관모를 얹고 도포를 입은 채 재판정에 섭니다. 이것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명확한 의지였습니다. 식민지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민족의 자존심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죠.

영화와 실제 역사의 차이점

영화 '박열'은 실제 역사에 매우 충실합니다. 일반적인 실화 기반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정도로 사전 고지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철저한 고증의 실화입니다'를 강조하며 시작하며, 이준익 감독은 일본 관객까지 인정할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가네코 후미코 평전과 옥중 자서전, 재판 기록과 수많은 신문 자료 등을 통해 90% 이상을 고증했습니다.

다만 영화에서 빠진 내용이 있습니다. 박열이 한국전쟁 때 납북당해서 북한에서 생을 마쳤다는 이야기는 빠져 있습니다. 영화는 그의 옥중 투쟁과 사형선고 이후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규모는 공식 발표와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6천여 명'이라고 표현하지만, 당시 조사에 따르면 더 많은 수의 조선인이 학살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

필자는 이 영화가 현대의 문화 안보 논의와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박열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본의 재판에 조선의 관모를 얹고, 전통 도포를 걸친 채 재판정에 섰으며, 심지어 그의 아내는 흰 한복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 안보'의 본질입니다. 국가의 이념과 문화를 지킨다는 것은 화려한 정책이나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개인의 작은 선택과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들의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영화는 또한 아나키스트라는 이념에 주목하게 합니다. 박열이 주장하던 아나키즘, 국제주의의 성격이 강하며, 민족주의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것은 박열의 저항이 단순히 '나라를 되찾자'는 민족주의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보편적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싸웠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문화 안보'를 이야기할 때, 박열의 삶과 죽음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정부의 이념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의 신념과 자존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박열은 그것을 몸으로 보여준 사람입니다.

기자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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