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정권을 향한 여성들의 투쟁, 100년 전 혁명의 목소리
영국 서프러제트 운동부터 미국의 역사적 참정권 획득까지, 여성들이 기본권을 위해 벌인 감동적인 투쟁의 역사와 오늘날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100년 전 그들의 투표는 죽음과 맞바뀌었죠
혹시 여성이 투표를 하는 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신가요? 하지만 현실은 놀랍습니다. 여성의 참정권이 최초로 주어진 것은 약 130년 전인 1893년 뉴질랜드에서였다거든요. 대한민국에서는 광복 이후인 1948년에, 다른 선진국들 또한 20세기가 넘어서야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죠. 여성이 남성과 같은 조건으로 투표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최근의 일입니다.
영국 '서프러제트'의 절절한 외침
가장 극적인 투쟁은 영국에서 벌어졌어요. 빅토리아 시대 영국 정부의 민주주의는 돈 있는 남성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초기 참정권은 일정한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낼 수 있는 자산가 남성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고, 이후 영국 정부는 보수당과 자유당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몇 차례 법 개정을 통해 참정권을 확대했지만 그때마다 언제나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자는 주장은 무시되곤 했다죠.
1903년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여성사회정치동맹(WSPU)을 결성하여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여성들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참정권을 요구했지만, 영국 정부의 응답이 없자 1908년부터 급진적인 투쟁을 벌였다고 해요. 이들을 일컫는 'suffragette(서프러제트)'라는 단어는 '참정권'을 뜻하는 'suffrage'와 여성형 접미사 '-ette'가 합쳐진 거예요.
죽음으로 써 내린 외침
1913년, 역사는 한 순간의 외침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1913년 더비 경마대회에서 당시 국왕인 조지 5세의 경주마에 몸을 던져 사망한 에밀리 데이비슨이라는 여성이 여성 참정권 운동에 가장 강렬한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고 하네요. 그의 장례 행렬이 자연스럽게 시위 행렬이 되면서 세계적으로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 언론화됐다거든요.
어떻게 여성들이 여왕의 경마에 몸을 던질 정도로 절박했을까요? 그들은 단순히 투표할 권리만을 원했던 게 아니었어요. 당시 여성에게는 참정권 뿐만 아니라 양육권도 보장되지 않아 자신의 아들이 입양되는 것을 강제로 지켜봐야만 했고 임금차별로 인해 사회적으로 자립할 기회조차 없었다거든요. 투표는 단지 정치 참여 그 이상의 의미였던 겁니다.
세계로 퍼진 희망의 물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운동은 잠시 중단됐지만, 전쟁이 끝난 후 1918년 '인민대표법'이 의회를 통과해 30세 이상의 일정 재산을 가진 여성과 재산이 있는 남자와 결혼한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다. 그리고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쟁취한 것은 1928년 '평등선거권법'이 통과한 이후부터이다죠.
영국의 투쟁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어요. 현재 존재하는 독립국 중에는 1893년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이 주어졌고, 미국의 여성 참정권은 주와 지방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점진적으로 실현되었으며, 1920년 미국 수정 헌법 제19조의 통과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우리가 당연하게 행사하는 투표권은 사실 엄청난 대가로 얻어진 거예요. 당연한 권리인 참정권이 여성에게 주어진 것이 이제 겨우 100년 넘었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매우 긴 시간 동안 목숨을 걸고 싸워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거든요.
가장 소중한 것들은 종종 가장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에요. 여성들이 경마장 펜스에 몸을 던졌던 그 절절함, 유죄 판결을 받고도 벌금을 거부했던 그 용기—이것들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약속이에요. 투표는 목숨을 건 투쟁으로 획득한 권리니까요.
박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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