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발전할수록 도둑은 더 영리해진다? 역사가 보여주는 아이러니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온 도둑질과 법의 흥미로운 관계를 살펴본다. 왜 도둑의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을까?
문명의 역설: 법이 나타나면 도둑도 나타난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인다. 고조선의 8조법에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자는 잡아다 노비로 삼는다는 구절로 보아 그 당시 이미 도적이 있었고, 세계사의 여러 고대 문명에서도 도둑의 처벌에 대한 법률을 확인할 수 있다.
왜 인류 최초의 법전들은 모두 도둑질에 대한 처벌로 시작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문명이 생겨나고 소유라는 개념이 태어나면서,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도 함께 피어난 것이다. 마치 그림자가 빛과 함께하듯, 도둑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와 정확히 같은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고대 법전들은 얼마나 엄벌했을까
고대 사회가 도둑을 대하는 방식은 오늘날의 우리 기준으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어떤 지역에서 발생한 절도에 대해 도둑을 잡지 못하면 마을에서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즉, 도둑을 못 잡은 공동체 자체가 책임을 져야 했다는 뜻이다.
로마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로마 제국의 12표법에서는 방화범, 절도범, 타인의 경작지에 무단으로 침입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심지어 절도범은 살인범과 같은 수준의 극형을 받았다.
고대인들이 도둑을 이토록 가혹하게 처벌한 이유는 무엇일까? 절도죄에 대한 처벌을 현시대 같으면 거진 살인자 같은 중범죄자들에게나 내려질 수준일 만큼 엄벌을 내렸었는데, 그만큼 절도죄가 차후 더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첫 단추라는 것을 고대인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동양의 지혜, 조선시대 형법의 변화
역사가 흐르면서 흥미로운 변화가 생겼다. 동양에서 법제도가 더욱 정교해지자, 법관들 역시 생각의 깊이가 깊어졌다.
고조선의 8조법에 의하면 살인죄인을 죽이는 생명형, 상해죄인을 곡물로 배상하게 하는 재산형, 절도죄인을 노비로 만드는 인격형이 있었다. 단순했던 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세밀해졌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도둑에 대한 법의 관점도 미묘한 변화를 보인다. 세종은 '절도 3범=교수형'으로 못박은 대명률 처벌 조항을 '지나친 엄벌'로 여겼다. 이는 단순한 정책의 변화가 아니었다. 강한 왕권 아래에서도 인간의 기본적인 연민이 법에 스며들기 시작했던 증거였다.
역사의 역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도둑을 잡기 위해 만든 법과 제도가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더 영리한 도둑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옛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이를 통렬하게 지적했다. "조그만 쇠갈고리를 훔친 사람은 목을 베이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법이 엄하면 엄할수록, 그것을 교묘하게 비틀어 이용하는 자들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소유, 재산, 명예, 권력—은 모두 도둑질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법전이 두터워질수록 그 법의 빈틈을 찾는 자들도 더욱 뛰어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역사 속의 도둑과 법의 이야기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가 법제도를 만든 이후 수천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도둑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오히려 현대의 도둑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리가 문명을 통해 얻은 것이 클수록, 그것을 빼앗으려는 욕심도 함께 컸다. 법이 발전할수록 법을 피하는 방법도 함께 정교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완벽한 법으로 모든 범죄를 막을 수는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법 자체보다는 법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 속에 자리한 기본적인 신뢰와 연민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도둑을 만든 것은 문명이 아니라, 문명 속에서 무언가를 더 원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그렇다면 진정한 문명의 발전은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인간의 도덕성이 함께 자라나는 것이 아닐까?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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