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깨운 '충절의 역사'...단종을 향한 566년 전 그 마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재조명된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 봉화에서 태백산까지, 충절의 현장을 따라가보다.
영화가 깨운 '충절의 역사'...단종을 향한 566년 전 그 마음
어쩜 이렇게 타이밍이 절묘할까요?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온 나라를 눈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지금, 봉화에서는 단종을 향한 또 다른 충절의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불러일으킨 역사의 물결
2026년 2월에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영월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관을 갖추어 이튿날 아전과 백성들을 거느리고 군 북쪽 5리 되는 곳에 무덤을 만들고 장사를 지냈다는 역사적 사실이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말이죠.
여러분도 극장에서 눈물 훔치며 나오신 경험 있으시죠? 저도 그 한 사람이었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 스포일러는 안 되겠네요! (웃음)
봉화, 또 다른 충절의 땅
그런데 단종을 향한 충성은 영월의 엄흥도만이 아니었습니다. 멀리 봉화 땅에서도 한 신하가 평생을 단종을 그리워하며 살았거든요.
봉화 공북헌은 도촌 이수형이 1455년 수양대군에 의한 왕위 찬탈이 이루어지자 사직하고 처가가 있던 향리로 내려가 은거하다가 단종 사후 산에 들어가 단종의 능침이 있는 영월 쪽(북향)으로 지어 평생을 숨어 살던 옛 집입니다.
생각해보세요.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이 주도하여 일으킨 쿠데타, 즉 '계유정난' 이후, 이수형은 벼슬을 버리고 은둔을 택했습니다. 그것도 단종의 능이 있는 영월을 향해 집을 짓고 평생을 그곳만 바라보며 살았다니... 이게 바로 진정한 '불사이군(不事二君)',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충절 정신 아닐까요?
전설 속에 살아 숨 쉬는 단종의 혼
봉화와 단종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을 안타깝게 여기던 주민 몇 명이 저녁 무렵 영월 관아에 볼일을 보러 가던 중, 마을 근처 누각 앞에서 흰 말을 타고 오는 단종과 마주쳤고, 단종은 '태백산에 놀러 간다'고 답했지만 이미 그날 낮에 단종이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단종의 혼령이었음을 깨닫고 단종이 태백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 이 얼마나 애절한 이야기인가요! 죽어서도 태백산을 찾아간 단종의 혼. 마치 고향 같은 곳을 그리워했던 걸까요? 아니면 높은 산에서라도 백성들을 굽어보고 싶었던 걸까요?
충절이 주는 현대적 메시지
566년이 지난 지금, 왜 우리는 다시 단종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걸까요? 아마도 '진정성'이라는 것이 점점 희소해지는 시대에, 목숨을 걸고도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신념이 더욱 빛나 보이기 때문 아닐까요?
엄흥도는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뚫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고, 이수형은 평생을 은둔하며 단종을 그리워했습니다. 이들에게 단종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지켜야 할 '가치' 그 자체였던 거죠.
봉화에서 만나는 역사의 온기
요즘 같은 코로나 이후 시대에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봉화는 어떠세요? 태백산과 소백산맥이 겹쳐지는 곳에 자리하며, 맑은 자연과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봉화는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진 곳으로 고즈넉한 사찰과 오래된 고택, 그리고 청정한 숲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드러내며 특히 겨울에는 설경이 더해져 더욱 깊은 고요함을 선사한다고 하니까요.
공북헌에 서서 영월 방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566년 전 그 간절한 마음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태백산을 오르며 단종의 전설을 떠올려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거예요.
영화 한 편이 불러일으킨 역사에 대한 관심, 참 신기하지 않나요? 스크린 속 이야기가 현실의 역사 현장으로 우리 발걸음을 이끌고 있으니까요. 봉화의 충절 이야기는 단종과 엄흥도의 만남만큼이나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기자 김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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