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을 밝힌 한 명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과 전구 혁명이 남긴 교훈
오직 3개월의 정규교육으로 1,093개의 특허를 남긴 토마스 에디슨. 전구 발명으로 인류의 밤을 영원히 바꾼 천재 발명가의 삶과 우리가 놓친 진실을 파헤쳐봅니다.
도시의 밤을 밝힌 한 명의 발명가
밤이 두려워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되기까지, 우리는 한 사람의 집착에 빚지고 있습니다.
1879년 10월의 어느 저녁, 토마스 에디슨은 1879년 전등 부속품을 개발했고, 이것이 인류 역사에 가장 실용적인 발명이 되어줍니다. 전구 발명만으로도 역사에 기록될 그의 이름 앞에는 놀라운 기록 하나가 더 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축음기, 전구 등)을 남긴 사람으로 1,093개의 미국 특허가 에디슨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3개월의 정규교육으로 천재가 되다
여기서 필자가 꼭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은 것은 3개월 뿐이었으나, 결혼하기 전에는 교사로 일했던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 덕에 점차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으며, 중앙교육연구원에서 펴낸 에디슨 전기(영국 엑스터 출판사 원전)에 따르면, 에디슨의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생각해서 직접 실험을 할 수 있는 과학책을 사 주었습니다.
주입식 교육의 벽에 부딪혔던 어린 에디슨을 살린 것은 어머니의 신뢰와 동료의 지원이었습니다. 모든 발명은 외로운 천재의 산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응원과 믿음 속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이 아프면서도 아름답습니다.
불 이후 인류 최고의 발명
전구의 발명은 발전, 송배전 부문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고 각 가정마다 전기가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이 전구가 조선에 들어오면서 경복궁 전체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에디슨의 전구 이전에는 어떤 세상이었을까요? 해가 지면 촛불과 가스등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밝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밤의 두려움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킨 것이고, 야간 경제를 탄생시킨 것이며, 도시의 모습까지 완전히 바꿔버린 혁명이었습니다. 한 잔의 커피가 바꾼 세계: 술 취한 문명을 깨운 검은 음료의 역사 처럼 작은 발명 하나가 문명 전체를 뒤흔드는 경우는 역사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천재의 그림자: 놓친 인간의 모습
그런데 필자가 당신에게 꼭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대한 발명가의 뒷면 말입니다.
에디슨은 한평생 발명/사업에 힘써왔지만 가족에게는 정말로 소홀했으며, 첫째 부인은 쓸 만한 발명품을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구박했고 대학교육에 대한 컴플렉스 탓에 자식들을 공과대학을 제외한 그 어떤 대학에도 보내지 않았으며, 첫 번째 부인 메리 스틸웰이 죽었을 때 그는 일이 바쁘다며 장례식도 가지 않았다고 하고, 그 후 한동안 적적하게 지내다 두 번째 부인이 된 미나 밀러에게 모스 부호로 프로포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에디슨의 위대함만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역사 공부란 영웅의 뒤편에 있는 상처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필자는 에디슨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과연 발명과 성공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위대한 성취와 헌신적인 가족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혹은 그 둘을 모두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전신기 특허로 큰 돈을 번 그는 1876년 세계 최초의 민간 연구소로 알려진 멘로파크 연구소를 세워 발명을 계속하였습니다. 부를 이루고도 더 많은 것을 원했던 에디슨처럼, 우리도 끝없는 경쟁과 발전의 늪에 빠져있지는 않은지요.
또한 원형의 마법, 바퀴 하나가 문명을 굴려낸 역사에서 보았듯, 모든 위대한 발명은 누군가의 작은 관찰과 남다른 질문에서 비롯됩니다. 에디슨이 우리에게 남긴 최대의 선물은 전구가 아니라, 어쩌면 끝없는 호기심을 가지는 것의 가치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삶의 밤을 밝혀준 발명가를 기억할 때, 그의 찬란함만이 아니라 그 뒤의 어둠도 함께 본다면—그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로부터 진정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자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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