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무기엔 침묵하면서...86세 원자력연구소 원로가 털어놓은 30년 전 그날들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소장이 재임 시절 겪었던 반핵 시위 상황과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 자립에 대한 회고를 공개했다.
"북한 핵무기엔 침묵하면서"...86세 원자력연구소 원로가 털어놓은 30년 전 그날들
여러분은 과학자들이 나라를 위해 밤새워 연구하는데, 책상 위에 올라가 앉아서 고함을 지르는 일을 상상해보신 적 있나요? 정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거든요.
20여 명이 소장실로 몰려와서는...
내가 원자력연구소장으로 일할 때는 20여명이 소장실에 몰려와서는 내 책상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습니다. 내 의자에 앉아서는 빙빙 돌기도 했습니다. 고함을 지르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이는 장인순 전(前) 원자력연구소장(86)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에요. 인터뷰는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에 있는 전의마을도서관에서 지난 1월 24일부터 네 차례 진행됐다고 하니, 정말 자세하게 진행되었네요.
이상하지 않나요? 이런 모순이
장 박사가 가장 속상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거예요. 그들은 한국에서 반핵을 외치면서 북한 핵무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핵탄두 장착 가능 미사일을 발사해도 침묵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우리나라 평화적 원자력 연구에는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위협적인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조용했다는 거죠.
대한민국 원자력의 아버지, 장인순 박사
그런데 이 분이 어떤 분인지 아세요? 1940년 전라남도 여수에서 출생한 장인순 박사는 핵연료 국산화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으며, 한국 표준형 원전과 하나로 원자로 개발을 주도했다.
여수중학교와 여수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학부와 대학원 화학과를 졸업했고,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중인 1979년 정부의 부름을 받고 귀국했다.
청계천에서 부품을 사던 시절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현실은 정말 척박했답니다. 연간 연구비가 970만원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연구 장비와 문서 자료가 없는 게 문제였다. 사과 궤짝 위에 비닐을 씌워서는 실험대로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정말 눈물겹지 않아요? 우리는 서울의 청계천 시장에 가서 중고 부품을 구입하곤 했다. 그곳에 가면 없는 것이 없었다. 가격이 정품의 3분의 1에 불과했고, 당일 구매가 가능했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거죠.
그럼에도 세계 1위 기술을 만들어낸
하지만 장 박사는 이런 어려움을 딛고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어요. 그는 인터뷰에서 "원자력 연구자들은 많은 수모를 당하고도 눈물겨운 노력을 한 끝에 원자력 기술 세계 1위를 달성했다"면서 "이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국방력 강화에 크게 기여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원전 기술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것도,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분 같은 과학자들의 헌신 덕분이거든요.
86세, 여전히 도서관을 지키는 분
놀랍게도 장 박사는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유난히 바람이 맑았던 지난 17일 오후 충청남도 세종시의 한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세계 최고령 도서관장'이라는 특이한 명함을 건넨 장인순 박사를 만났다. 대한민국 원자력의 독립을 이끈 주인공인 장 박사는 2년 전 부인과 사별 후에도 매일 도서관에 출근한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시지 않나요? 평생을 과학에 바치신 분이 이제는 아이들의 교육에까지 힘쓰고 계신다니요.
과학자들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네요. 우리가 누리는 과학기술의 혜택 뒤에는 이런 분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기자 최호선 ho.choi@tren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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