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년 제국의 영광, 합스부르크 왕조가 새긴 오스트리아의 기억
유럽 역사를 지배한 650년간의 합스부르크 왕조. 1273년 루돌프 1세부터 1918년 제국의 붕괴까지,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반드시 만나야 할 역사의 흔적들을 따라가본다.
650년의 영화, 합스부르크 왕조가 지배한 오스트리아
그때였다. 1273년,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들이 한 명의 백작을 독일의 왕으로 선출했을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저 약소한 스위스 백작 가문이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가 되리라는 것을. 루돌프 1세가 독일의 왕으로 선출되었고, 1282년 합스부르크 왕를 위해 오스트리아 공국을 점령한 것으로 시작된 이 가문의 이야기는 빈의 골목골목에, 궁전의 벽면에, 아직도 살아있다.
작은 백작 가문에서 유럽 최강의 제국으로
합스부르크 왕조는 1276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 거의 65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북부를 포함하여 유럽의 상당부분을 지배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정략결혼이라는 매서운 칼을 세우고 조용히 무릎을 꿇게 했던 이 가문의 전략은 "다른 자들은 전쟁을 하거니와, 너, 오스트리아는 결혼하라(Bella gerant alii, tu felix austria, nube)"라는 라틴어 격언에 압축되어 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세습하면서 근세 서유럽에서 유일하게 황제 가문의 지위를 누렸다. 그들은 결혼으로 보헤미아를, 헝가리를, 빌레브스부르크를 집어삼켰다. 혈통 하나로 유럽을 재편한 것이다.
빈이 포위되었을 때
유럽의 역사는 종종 가장 극적인 순간에 결정된다. 1529년과 1683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받았는데(제1차 빈 공방전∙제2차 빈 공방전) 모두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1683년 9월, 오스만 제국의 대군이 빈을 포위했을 때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폴란드 왕 소비에스키의 기병대가 언덕에서 쇄도해올 때, 합스부르크 제국의 미래가 결정되었으리라는 것을. 빈 전투는 300년에 걸친 합스부르크와 오스만 전쟁의 정점을 기록했다. 그날의 승리로 합스부르크는 동유럽으로의 확장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 여왕의 시대
역사의 전환점은 종종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온다. 마리아 테레지아(1717년 5월 13일 ~ 1780년 11월 29일)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다. 아들을 낳지 못한 아버지 카를 6세를 대신하여 그녀는 역사의 무대에 나섰다.
젊은 여왕은 결코 쉬운 길을 걷지 않았다. 카를 6세 사후 프로이센과 바이에른, 프랑스, 작센에서는 그녀의 계승을 반대하였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했다. 하지만 40년에 이르는 긴 치세 동안 수많은 개혁과 산업화,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여 30년 전쟁 이후 기울어가던 오스트리아를 크게 발전시키고 유럽 강대국의 반열로 다시 끌어올렸다.
단순한 왕비가 아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 최초로 의무교육 제도를 실시하여 계몽절대주의 체제를 견고히 다지고 중앙집권체제의 강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단일화를 구축했다. 귀족에게도 세금을 걷게 했고, 군대를 현대화했으며,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실질적인 제국의 지배자로 40년을 통치했다.
쇤브룬 궁전 – 여제의 야심이 새겨진 건축물
빈의 남서쪽, 광활한 정원 위에 솟아 있는 쇤브룬 궁전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가슴을 뛰게 한 공간이었다. 쇤브룬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우물이라는 뜻으로서 빈의 왕궁이 인근의 물을 썼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별궁이 아니었다.
1743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대가 되어서야 니콜라우스 폰 파카시와 요한 페르디난트 헤첸도르프 폰 호엔베르크에 의해 확장되어 오늘날의 궁전과 공원의 모습이 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랑스 왕국의 베르사유 궁전에 비견되는 궁전을 가지고 싶다는 야심으로 건축했으나, 여러 문제로 원 계획의 3분의 2쯤 되는 크기로 완공되었다. 그 대신 건물 외장에 칠한 노란색 도료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좋아한 색깔인 옅은 노랑색인데 마리아 테레지아 옐로우로 불린다.
쇤브룬 궁전은 18세기 중엽부터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고, 황실의 여름 별장으로 쓰일 동안에 이 궁전은 수백명의 궁중인들이 살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다. 그곳에서 음악이 울렸고, 외교가 이루어졌으며, 제국의 미래가 그려졌다.
거대한 제국의 마지막 날
그러나 모든 제국은 유한하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지배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했다가 패전함으로 인해 제국이 해체되고 본거지인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합스부르크가 지배했던 모든 나라들이 군주제와 귀족제를 폐지함으로써 모든 제위와 왕위를 상실하고 특권이 소멸했다.
650년을 지속한 제국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빈의 거리에서는 더 이상 황제의 마차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쇤브룬 궁전은 박물관이 되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죽지 않았다. 현재의 오스트리아는 1인당 GDP가 5만 달러가 넘는 매우 부유한 선진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합스부르크를 만나다
오스트리아 여행은 반드시 역사를 통해 시작되어야 한다. 호프부르크 궁전의 2000개가 넘는 방들, 쇤브룬 궁전의 로코코 장식, 슈테판 대성당의 혼합 양식 – 모두 합스부르크의 손길이 닿아 있다. 유럽의 어떤 위대한 왕실도 합스부르크 왕조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광대한 지역에 큰 영향을 끼친 경우는 없다.
빈의 거리를 걸을 때, 당신은 단순히 관광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650년의 역사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이다.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 길을 걸었고, 나폴레옹이 점령한 궁전을 밟고, 케네디와 흐루쇼프가 앉았던 방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과거의 영광에 갇혀 있지 않지만, 그 역사를 잊지도 않는다. 바로 그것이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는 이유다.
기자: 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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