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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국모 마리아 테레지아: 초등학교를 무기로 한 계몽절대주의의 혁신

합스부르크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가 전국 의무교육과 행정개혁으로 근대 오스트리아를 만든 40년의 통치. 전쟁보다 교육을 선택한 계몽군주의 선택과 오스트리아 현대화의 출발점.

류상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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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국모 마리아 테레지아: 초등학교를 무기로 한 계몽절대주의의 혁신

빈의 쇤브룬 궁전을 방문한 여행객들이 마주하는 역사 속 인물이 있다. 바로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던 마리아 테레지아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그녀가 정치적 승리나 전쟁의 승리자가 아닌, 교육 혁명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을 모른다.

23세의 위기에서 출발한 통치

마리아 테레지아는 태어나자마자 1713년 국사조칙에 의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녀로 공표되었으며, 카를 6세가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그의 사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이 되었고 영토들을 물려받았다. 문제는 1740년 당시 여성 군주를 인정하지 않는 유럽의 열강들이 즉시 오스트리아 영토를 탐욕했다는 점이었다. 23세의 젊은 여성으로서 거대한 제국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군사력이 아닌 다른 무기를 선택했다.

전쟁 대신 교육을 택한 선택

이것이 그녀의 통치 방식을 결정지었다. 사병 확충 주장을 물리치고 다른 나라보다 먼저 전국에 초등학교를 신설하여 의무 교육을 확립시켰으며, 같은 내용의 교과서가 전국적으로 배포되어 각 지역마다 각각의 언어로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여 국민들의 지적 수준이 크게 상승했다.

이는 당대의 관점에서 얼마나 혁신적이었던가. 18세기 중반,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국민 교육은 개인의 책임이거나 교회의 몫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국가가 모든 아이들에게 공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것은 시민 국가의 탄생을 의미했다.

계몽절대주의와 근대 국가의 출발

18세기의 절대주의는 계몽적 전제정치로 특징지어지는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요제프 2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의 통치가 그 전형이며, 그들은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개명적인 사회 개혁을 실시하고 정치·경제의 근대화를 수행하여 강력한 근대 국가 건설을 기도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교육 정책은 단순히 문해력을 높이는 것을 넘어섰다. 오스트리아 최초로 의무교육 제도를 실시하여 계몽절대주의 체제를 견고히 다지고 중앙집권체제의 강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단일화를 구축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제국의 영토들을 하나의 국가 정체성으로 통합하려는 전략이었다.

행정과 재정의 전면 개혁

교육 정책은 시작일 뿐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행정, 재정, 외교 분야에서 개혁정책을 강력히 추진했고, 군제 개혁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개혁들은 느슨했던 합스부르크 제국을 현대적 중앙집권국가로 재편했다.

개인과 통치자의 모순 속에서 빛난 성과

흥미롭게도, 이 위대한 국모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첫사랑인 프란츠 슈테판과 당시로서는 극히 드물었던 연애 결혼에 성공하였으며, 금실이 좋아 부부 생활은 매우 원만했다. 명목상의 황제인 남편 프란츠 1세의 치세기간 중 그는 실질적인 통치자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은 물론 신성 로마 제국의 정치에 관여하였다.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마리아 테레지아를 만나는 법

빈을 방문할 때, 쇤브룬 궁전의 장대한 방들을 거닐며 18세기의 영광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동시에 이곳이 교육 개혁을 꿈꾼 위대한 국모의 무대였다는 점을 기억해보자. 호프부르크 궁전의 역사박물관에서, 빈의 국립박물관에서 만나는 그녀의 초상화는 단순한 왕비가 아닌, 역사 변화의 주체였던 한 여성의 면모를 담고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탄생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개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녀가 마련한 근대적 행정 체계와 교육 시스템이 제국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남긴 유산

마리아 테레지아는 1780년 74세의 나이에 서거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유산은 오늘날까지 오스트리아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4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며 강한 결단력과 여성성을 겸비한, 위정자로서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재평가되고 있다.

전쟁과 정복이 국가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통치자. 교육과 행정, 개혁의 힘으로 근대 국가를 건설한 계몽절대주의의 대표 주자. 그것이 바로 마리아 테레지아가 오스트리아 역사 속에서 '국모(國母)'로 불리는 이유다.


기사: 류상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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