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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년 권력의 향기가 남은 곳, 합스부르크 왕조와 빈의 카페 문화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광과 빈 카페하우스의 우아한 전통. 오스트리아 여행 전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커피 한 잔의 의미를 탐구한다.

추익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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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를 만든 왕조, 합스부르크의 650년 영광과 몰락

오스트리아 여행을 떠나기 전 꼭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 나라의 모든 것을 결정지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이야기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1276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 거의 65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북부를 포함하여 유럽의 상당부분을 지배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이 장대한 여정은 언제 시작됐을까? 1279년 루돌프 1세가 오스트리아 영지를 획득한 이후,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의 지배령이 되었다. 한 백작 가문이 작은 영지 하나를 획득한 것에서 시작된 이 왕조의 성장은 실로 놀랍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는 결혼과 입양을 통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권력의 꽃을 피우다

시간이 지나면서 합스부르크 왕조는 유럽의 정치 무대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1438년부터 1806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자들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서 거의 지속적으로 통치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지위는 단순한 명목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부 유럽에서의 절대적 영향력을 의미했다.

특히 18세기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전성기였다. 남편 프란츠 1세와 공동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을 통치한 카를 6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많은 개혁정책으로 합스부르크 왕가를 다시 한번 도약시킨다. 열여섯 명이나 되었던 그녀의 자녀 중, 맏아들인 요제프 2세는 계몽군주로서 오스트리아의 문화와 예술을 융성시켰다. 이 시기 빈은 유럽의 음악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제국의 몰락과 새로운 정체성 찾기

하지만 모든 제국은 쇠퇴한다. 군주제는 제1차 세계 대전 말기에 불가피한 패배에 직면하여 분열되기 시작했고, 1918년 말 독일-오스트리아 공화국과 헝가리 제1공화국이 선포되면서 결국 해체되었다. 650년을 지속해온 왕조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합스부르크의 몰락 이후다. 작은 공화국으로 축소된 오스트리아는 오히려 더욱 독자적인 정체성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냉전체제로 돌입한 후,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으로서 독일과 연합하지 않으며, 합스부르크가를 부활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국과 소련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의 지위를 유지하며 세계 정치와 문화, 예술의 중심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빈 카페하우스: 혁명과 창조가 만나는 공간

빈의 거리를 걷다 보면 유난히 많은 카페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우연은 아니다. '아인슈패너 커피(일명 비엔나 커피)'를 비롯, 30여 종의 커피가 개발됐으며, 1910년에는 1,200곳의 카페가 영업을 할 정도로 카페가 많아졌다.

카페 문화의 시작

빈의 카페 문화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선다. 2011년에는 빈 카페하우스 문화(Wiener Kaffeehauskultur)가 유네스코(UNESCO)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식문화가 아니라 문명의 산물이라는 증거다.

혁명의 산실이자 창조의 공간

역사의 관점에서 빈의 카페하우스는 매우 흥미로운 공간이다. 도망 중인 반체제 인물들이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공간이었던 빈의 지식인 공동체는 아주 작아서, 모든 이들이 서로를 알았으며, 이곳의 카페하우스는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어 토론과 대화가 오가는 공간이었다. 원두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기 카페하우스는 권력층 남성들만 이용할 수 있었으며, 이들은 카페하우스에 비치된 신문을 읽고 당구나 체스 등 사교 활동을 즐겼다. 이후 카페하우스는 가난한 예술가가 예술적 영감을 얻는 장소이기도 했다.

카페하우스에 드나들던 대표적 명사로 지그문트 프로이트, 레프 트로츠키, 당시 화가를 꿈꾸던 아돌프 히틀러 등이 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카페하우스는 시인이나 소설가, 극작가 등 여러 문학인의 창작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현대에 살아있는 전통

오늘날 빈의 카페하우스를 방문하는 것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빈 카페 센트럴이나 카페 데멜 같은 역사 있는 카페들은 약 200년의 전통을 간직한 고풍스러운 호텔 안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현장이다. 현재도 빈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카페(커피숍)가 굉장히 많고, 빈 시민들은 카페를 거의 집안 거실처럼 친숙하게 드나들곤 한다.

빈 커피의 참 맛

빈에서 커피를 제대로 마시려면 몇 가지를 알아야 한다. 카페 챈트랄에서 커피를 시키면 커피와 함께 꼭 물을 내놓는다. 먼저 물로 입안을 헹군 다음에 커피를 제대로 음미하라는 뜻이다. 이것이 빈식 커피 문화의 진수다. 빠르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깊이 있게 음미하는 철학이 담겨 있다.


여행자가 꼭 방문해야 할 곳들

합스부르크 역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면 몇 곳의 궁전을 놓칠 수 없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건축가 니콜로 파카시에게 로코코 양식으로 궁전을 건축할 것을 명하였고 황제의 결정에 따라 오스트리아 황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쇤브룬 궁전이 완성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이자 방문객이 가장 많은 유적지 중 하나이며, 문화적으로도 가장 뜻 깊은 곳 중 하나이다.

또한 13세기에 건축되어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가 거주했던 궁전인 호프부르크는 유럽을 제패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 기간 동안 신 왕궁을 포함한 여러 구역이 증축되면서 자연스럽게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의 건물을 갖추게 되었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빈을 빼놓을 수 없다. 수도 빈은 음악의 도시라 불리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 오페라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세계 양대 오케스트라로 꼽히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일상의 우아함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합스부르크의 영광과 그 영광 위에 피어난 빈의 카페 문화를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오스트리아 여행의 의미다. 한 잔의 커피로 시작하는 역사 여행, 빈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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