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전 사북 사건, 재판을 맡았던 군판사의 늦은 고백 형량 압박에 창고에 숨어 버텼어요
1980년 4월 사북 탄광 항쟁 당시 군법회의 재판관으로 광부들의 판결을 내렸던 임원배 판사가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그때의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형량 압박 속에서 고통받았던 사건의 내막을 살펴봅시다.
46년의 침묵을 깬 군판사의 고백
1980년 4월 21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노사간의 극심한 갈등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이 바로 사북 사건이에요. 벌써 46년 전의 일이 되었네요.
최근 영화 '1980 사북'이 개봉되면서 이 사건이 다시 조명받고 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소식이 있어요. 2025년 12월 19일 원주에서 열린 영화 상영회에서 임원배 재판관(당시 1군 사령부 보통군법회의 재판관으로 사북사건의 판결에 참여했던 인물)이 영화를 관람하고 당시 재판부도 국가 권력이 개인에게 가한 고통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며 피해자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달한 것이랍니다.
당시 광부들이 겪었던 현실
사실 사북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정말 심각했어요. 당시 탄광의 상황은 매우 열악했고, 갱도 매몰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진폐증에 시달리는 광부가 허다했고, 높은 노동 강도 때문에 도시 노동자에 비해서는 임금을 더 받았으나 그조차도 당시 최저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월평균 15만 5천원이었습니다.
광부들의 생활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아시나요? 광부들은 탄광에서 탄가루에 범벅이 되어 새까맣게 되어도 씻을 물조차 제대로 없어 수건에 물을 묻혀 몸을 닦아내면서 살았고, 한 광부 가족은 "70년대 입주한 지장산 사택은 세탁은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살았다"라고 회고했어요.
평화로운 합의, 그 뒤의 비극
24일 노·사·정 대표가 합의에 도달했고, 여야정치인들이 현장을 다녀가고 사태가 평화적으로 수습되는 듯 보였으나, 사태가 진정되자 당시 계엄사령부는 합의를 깨고 사건 관련자와 그들의 가족 81명을 군법회의에 송치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에요. 계엄사령부는 이들에게 모진 고문과 구타, 성고문 등을 가하며 자백을 요구했고, 피해자들은 유산과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얻고 2~3년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역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
오랫동안 이 사건은 '사북 사태'라는 이름으로 광부들의 폭동으로만 기억되어 왔어요.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본격적인 명예회복 활동이 시작되었고, 2015년 2월 서울고법 형사6부는 사북항쟁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역을 받았던 이원갑 씨와 신경 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제 임원배 판사의 고백은 단순한 개인의 양심선언을 넘어, 국가의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영화 상영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당시 판사와 피해자인 이원갑이 부둥켜 안는 모습을 박수로 화답했답니다.
46년 전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우리의 역사. 이제라도 제대로 된 사과와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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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박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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