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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칼이 결국 혁명가를 무를 때: 테르미도르 반동과 로베스피에르의 몰락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프랑스 혁명이 어떻게 공포정치로 변했고, 그 주인공 로베스피에르가 자신이 만든 단두대에서 처형된 사건의 이야기입니다. 과격함의 끝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을 살펴봅시다.

최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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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칼이 결국 혁명가를 무를 때: 테르미도르 반동

안녕하세요. 요즘 세상 뉴스를 보면 누군가 옳다고 믿는 것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의 무서움을 많이 느껴요. 오늘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찾아봤어요. 프랑스 혁명 시대 로베스피에르라는 인물이 벌인 공포정치의 끝에 대해서 말이에요.

약자의 편에 섰던 변호사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북부 아라스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졸업 후에는 고향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약자와 빈자를 돕는 데 힘을 썼어요. 처음에 그는 영웅처럼 보였어요. 출세의 길을 거부하고 청빈한 삶을 살며 약자의 편에 선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거든요.

1789년 5월 루이 16세가 176년 만에 삼부회를 소집했을 때, 로베스피에르는 고향 아라스가 속해 있는 아르투아 지역의 '제3부'(평민층) 대표로 선출되어 파리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어요.

자유라는 이름의 독재

하지만 역사는 복잡한 거죠. 혁명이 격해지면서 로베스피에르는 급진 자코뱅파의 지도자가 되었어요. 대중의 열광을 등에 업은 그는 혁명의 이름으로 세상을 '순수하게' 만들고자 했고, 자유를 위해 독재를 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도달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어요.

이게 문제였어요. "혁명정부는 폭정에 대항하는 자유의 전제정"이라고 선포하며, 자신의 편에 서지 않는 모든 이를 공안위원회에 회부했거든요. 로베스피에르는 혼란한 국내외 시국을 해결하고 혁명성과들을 보호한다는 구실 하에 공포정치를 실시했으며, 비상시국을 선언하고 독재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혁명정부를 이끌었어요. 공정가격제 등 통제경제 정책을 실시했고 혐의만으로 체포가 가능했으며 밀고자들에게는 포상금을 지급했어요.

두려움의 시대

1794년 7월, 프랑스 혁명력으로 테르미도르였을 때, 그 전달에만 벌써 1,300여 명이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어요. 혁명 공화정부의 공안 공포정치 5년 동안 시민 50여만 명이 숨졌고, 혁명의 서막인 1789년 7월 12일 바스티유 습격의 주동자였던 혁명파 저널리스트 카미유 데물랭도 친구인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단두형을 받았어요.

이게 얼마나 끔찍했냐면요, ''혁명의 적'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면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프랑스는 혁명이 아닌 공포의 나라가 되버렸습니다.

과격함의 끝

그런데 여기서 역사가 돌아서요. 로베스피에르의 마지막 연설은 그의 몰락의 시작이었어요. 그는 이 연설에서 새로운 '숙청'을 암시했지만, 구체적인 대상을 밝히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많은 의원들이 자신이 다음 숙청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어요.

국민공회의 의원들이 마침내 뭉쳤어요. 1794년 7월 27일 로베스피에르가 무자비한 공포정치를 펼치다가 그 가혹함에 불만을 품은 반대파들에 의해 숙청을 당했고, 로베스피에르, 오귀스탱, 생쥐스트, 쿠통, 르바 등 공포정치의 주역과 그 계파 일원들은 다음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어요.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공포한 법에 따라 사실 관계 조사도 없고, 변론의 기회도 없이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이했어요.

역사에서 이 사건을 '테르미도르 반동'이라고 부르는데요, 역사학계에서는 이때를 기점으로 프랑스 대혁명은 끝났다고 평가해요.

우리가 배워야 할 것

보이나요? 자유와 평등을 위해 왕과 귀족을 무너뜨렸던 그 열정이, 결국 자신의 친구들과 동지들까지 죽이게 만들었어요. 독일 역사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말했어요: "한번 살인을 이론적으로 시인하면 어쩔 수 없이 살인은 계속 발생하기 마련이에요."

이게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처음에는 옳은 일을 하려고 했을 거예요. 약자를 돕고 싶었을 거고요. 하지만 한 번 누군가를 '적'이라고 정의하고 제거하기 시작하면, 그 기준이 점점 뭉뚱그러지고, 결국 아무도 안전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려요.

오늘날 우리도 이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고 봐요. 아무리 올바른 목표라도, 그 과정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결국 혁명 자체를 파괴하게 될 수 있거든요. 역사는 그렇게 우리에게 속삭여요. 옳음과 틀림을 논하되, 상대를 인간으로 대하라고 말이에요.


기자: 최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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