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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산통, 과학으로 치료되다: 빅토리아 여왕과 '귀족적 진통제'의 역사

19세기 여성의 출산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진통제를 사용한 순간, 의료사와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이 뒤바뀌었습니다. 한 왕비의 용기가 만든 의료 혁명입니다.

박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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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산통, 과학으로 치료되다: 빅토리아 여왕과 '귀족적 진통제'의 역사

그 날,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1853년 4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아홉 명째 자녀를 낳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산모들은 이 과정을 '신의 저주'라고 불렀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겪는 것이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자녀를 많이 낳은 여성일수록 더 끔찍한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의사들은 이 고통이 자연스럽고 필요하다고 믿었고, 산모의 신음소리는 '진정한 여성다움'의 증거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달랐습니다. 필자는 왕실의 산파이자 의사인 제임스 심프슨의 일기를 읽으며 그 날의 결정이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여왕은 새로운 마취약인 클로로포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영국 사회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과학이 만든 작은 병 하나

19세기 중반, 마취의 역사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1840년대에 에테르와 아산화질소(웃음 가스)가 외과수술에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어떤 의사도 '여성의 출산' 같은 '자연스러운' 과정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여성이 감수해야 할 운명이었으니까요.

스코틀랜드의 의사 제임스 심프슨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클로로포름이 에테르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빠르게 작용하며, 산모의 의식을 완전히 앗아가지 않으면서도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 방울의 액체가 혁명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신의 뜻에 거역하는가?'— 종교와 과학의 충돌

빅토리아 여왕이 클로로포름을 사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 사회는 들썩였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갈렸던 이유는 '과학'이 아니라 '종교'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격노했습니다. 구약성경의 에바 이야기를 들먹으며, 산고는 여성이 감수해야 할 신의 형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의료계의 보수적 의사들도 합세했습니다. 마취를 사용하면 모성 본능이 감소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제기했습니다. 여성이 고통 없이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걱정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읽으면 터무니없지만, 그것이 그 시대의 '의학적 공식'이었습니다.

왕비의 권력, 과학을 승리로 이끌다

역사에는 항상 그 시대를 바꾸는 순간이 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선택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한 번의 경험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여왕은 클로로포름이 자신의 고통을 완벽하게 없애주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뜻'도 아니었고, 모성애가 줄어들지도 않았습니다.

왕실의 승인이라는 것은 대단한 힘이었습니다. 반발하던 의사들도 '여왕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사실 앞에 침묵했습니다. 1850년대 후반부터 클로로포름과 에테르는 산과 마취의 표준이 되었고, 여성들의 출산 고통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단순한 의료 기술의 발전이 아니었습니다. 여성의 몸을 '신의 형벌을 받는 대상'이 아닌 '치료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대전환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은 파급력

필자는 이 이야기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선택은 단순히 '산모의 고통 완화'를 넘어섰습니다.

마취의 보편화는 여성 의료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의사들이 자궁과 골반 내 장기를 진단하고 치료할 때도 마취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여성 질환의 진단과 치료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생명을 구한 칼날: 제왕절개 수술이 만든 의료 혁명의 역사와 같은 외과적 시술도 마취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안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마취의 발전은 외과수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결국 근대 의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습니다.

권력, 권리, 그리고 과학

필자가 이 이야기를 꼭 다루고 싶었던 이유는 역사의 한 장면에서 보이는 패턴 때문입니다.

"권력 없는 진실은 무력하다"

심프슨 의사는 뛰어난 과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발견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왕비의 권력이 필요했습니다. 반대로, 왕비는 절대 권력을 가졌지만, 과학 없이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둘이 만났을 때 비로소 역사가 움직였습니다.

이는 우리 시대에도 적용되는 교훈입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아무리 객관적인 사실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확산할 권력(정치적 영향력, 미디어의 힘, 조직의 힘)이 없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권력만 있으면서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면, 사회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제임스 심프슨의 만남은, 한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줍니다. 여왕이 있었기에 수천만 명의 평범한 여성들이 출산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의 세상

16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우리는 출산 시 마취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자신의 의료 결정에 참여할 권리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의 용기 있는 선택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움직입니다. 작은 한 걸음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는 것. 빅토리아 여왕의 산실(産室)에서 시작된 그 작은 용기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필자는 여전히 감동합니다.

당신이 조금도 아프지 않게 치과에 앉아 있을 때, 어떤 여성이 두려움 없이 출산의 순간을 맞을 때, 그것은 모두 누군가의 용기 있는 선택 덕분이었습니다.


박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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