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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공포의 300년, 유럽을 삼킨 마녀사냥의 진실

15~18세기 유럽을 휩쓴 마녀사냥으로 수십만 명이 처형됐습니다. 한 권의 책으로 촉발된 이 참극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경고는 무엇일까요?

김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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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촉발한 300년 악몽, 유럽의 마녀사냥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혼자만의 의견을 가진 여성'이나 '틀에 맞지 않는 남성'을 마녀라고 부른 적 있으신가요? 농담처럼 쓰이는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이 실제 역사에서는 얼마나 처참했는지 아실까요?

선의의 치료사에서 악의의 마녀로

중세 유럽인들의 생각 속에 '마녀'는 애초에 사악하지 않았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출산이나 질병 치료 같은 의료 기능을 담당하거나 점을 치고 묘약을 만드는 주술적 기능을 수행한 자들이었습니다. 마녀란 단순히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악마의 종'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마을의 조산사였고, 약초 전문가였으며, 민간의료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치료자들이 처형대의 주인공이 되었을까요?

'마녀의 망치', 인쇄술이 만든 악몽

흥미롭게도, 이 비극의 시발점은 기술 혁신과 깊이 닿아있습니다. 마녀 식별법을 담은 《마녀의 망치》라는 책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 활자 인쇄술이라는 최신 기술 덕분에 대량으로 제작돼 팔려나갔고 이는 마녀사냥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이것이 역사적 아이러니입니다. 지식을 민주화하고 계몽을 가져올 것이라 기대했던 인쇄술이 오히려 집단 광기를 널리 퍼뜨리는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현대에서 소셜 미디어가 때로 거짓 정보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것처럼요.

사회 위기, 희생양을 필요로 하다

14세기부터 불어 닥친 유럽의 '마녀사냥'은 17세기까지 대략 20만 명~50만 명의 사람들을 처형대에 올렸습니다. 이 거대한 숫자 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마녀사냥이 시작된 원인은 오랜 기간 축적된 사회적 모순 때문이라기보다는 근세 유럽에 갑자기 닥친 소빙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남서부의 비젠슈타이크 마을에서 최초의 대규모 마녀 사냥은 1562년 8월 우박을 일으켜 농작물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혐의로 일부 여성을 체포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날씨가 나빴고, 농작물이 죽었고, 사람들이 굶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탓해야 했습니다. 《마녀의 망치》 득세의 이면에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묵인하고 방조한 세속 권력과 교회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기나긴 십자군전쟁의 패배로 혼란과 분열, 왕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에 휩싸인 유럽 사회의 위기를 타개할 '희생양'이 필요했던 세속 권력, 그리고 종교 개혁의 열풍과 극심한 갈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를 '신앙의 적'으로 몰아갈 필요성이 있었던 교회가 그들입니다.

결국 마녀사냥은 자연재해와 사회 불안이 일으킨 집단 히스테리였던 것입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건 여성들이었다

이 비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16세기부터 17세기 사이 유럽에서 마녀사냥으로 처형당한 5만~10만 명 중 대다수가 여성이었습니다. 사실상 마녀라는 '죄목'으로 고발당한 사람 중 80%,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 중 85%가 여성이었으며, 남성들은 공범으로 몰리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1587~1593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 부근의 22개 마을에서는 몹시 참혹한 마녀사냥이 벌어졌습니다. 총 368명이 화형당했으며, 두 개 마을에서 살아남은 여성이 단 한 명일 정도였습니다. 한 마을 전체가 여성들 없이 남겨지다니요.

마녀사냥은 여자끼리의 우정을 극도로 위험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가끔 만나 수다를 떨던 옆집 친구가 체포되는 순간, 고문과 협박 속에 자신의 이름을 불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유럽 여자들은 온순하고 조용하고 거슬리지 않는 몸가짐을 익혀야 했습니다. 다른 여자와 절대 교류하지 않고 집안에만 붙어있어야 했습니다.

광기는 끝났을까?

계몽주의가 이에 맞서 승리하면서 마녀 광풍이 사그라들었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계몽주의가 막 속도를 내기 시작한 17세기 후반에는 마녀에 대한 믿음이 이미 급격히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3년 3월 5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교황청은 《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해 과거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잘못을 최초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때 마녀사냥에 대한 잘못도 인정하며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의 이름으로 사죄했습니다.

현대는 다를까?

흥미로운 점은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이 지금도 여전히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마녀사냥'이란 말은 지금도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마녀사냥에 대해 정치학에서는 전체주의의 산물로, 심리학에서는 집단 히스테리의 일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회학에서는 집단이 절대적 신조를 내세워 개인에게 무차별한 탄압하는 행위의 일환으로 간주합니다.

우리는 종종 특정 집단을 비난하고 배제합니다. SNS에서 누군가를 집단으로 몰아갑니다. 정파의 반대자를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습니다. 이것이 현대판 마녀사냥이 아닐까요?

역사 속 마녀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사회가 불안할 때 희생양을 찾으려 하고, 단순한 가설이 반복되면 진실처럼 여겨지며, 개인의 목소리는 집단 광기에 묻힌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도, 여기서도.

그렇기에 우리는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혹시 내가, 우리가 누군가를 마녀로 만들고 있지는 아닐까?


기사: 김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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