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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이 만든 '그린백' - 미국 최초 종이돈의 탄생

자금이 부족해진 남북전쟁 당시 미국 정부가 종이돈을 처음 발행했다. 이것이 미국 화폐 역사를 바꾼 '그린백'의 탄생 이야기다.

이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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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만든 화폐 - 그린백의 탄생

1861년 4월, 미국 남북전쟁이 터졌다. 전쟁은 북군의 자금줄을 졸라맸다. 북부 연방정부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 빠졌다. 군인 월급도 주지 못했다. 무기도 살 수 없었다.

전쟁은 돈을 먹는 괴물이다.

금화가 사라졌다

전쟁이 터지자 국민들이 금·은화를 집 안에 숨겨뒀다. 누가 내일을 알겠는가. 불안에 떨린 사람들은 화폐를 비축했다. 8월 1861년부터 4월 1862년 사이 미국인들이 전쟁 공포로 동전을 비축하자 순환하는 금·은화의 양이 급격히 감소했다.

정부는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병사들이 기아 선상에 내몰렸다. 1861년 연방정부는 전쟁 자금이 절실했다. 차입과 세금만으로는 부족했기에 결국 종이돈을 인쇄하기로 결정했다.

역사상 처음 - 미국 정부의 종이돈

이제까지 미국에서 종이돈은 사적 은행들이 발행했다. 신뢰도 들쑥날쑥, 위폐도 많았다. 남북전쟁 이전 미국은 금·은화를 공식 화폐로 사용했으며, 종이화폐는 민간 은행이 발행하되 그 은행 지점에서만 금·은화로 환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달랐다. 1861년 7월, 연방 의회가 움직였다. 7월 17일 의회는 재무부가 600만 달러의 '디맨드 노트(Demand Notes)'를 인쇄하도록 승인했다. 이것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정부 발행 종이돈이었다.

디맨드 노트는 $5, $10, $20 단위로 인쇄되었다.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지폐의 뒷면을 녹색 잉크로 인쇄했는데, 이것이 '그린백'이라는 별명을 낳았다. 초록색 지폐. 이것이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 달러의 애칭으로 남아있다.

금으로 환전할 수 없는 돈

하지만 디맨드 노트로도 부족했다. 전쟁 비용이 천문학적이었기 때문이다. 디맨드 노트의 발행량은 정부의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1862년 2월, 더 과감한 결정이 내려졌다. 2월 25일 의회는 제1차 법정화폐법(Legal Tender Act)을 통과시켜 1억 5천만 달러의 미국 지폐(United States Notes)를 발행하도록 승인했다. 이 새로운 지폐는 금으로 환전할 수 없었다.

혁명이었다. 이 지폐들은 명목화폐 형태로, 기존 금·은 적립금으로 뒷받침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목적에서 법정화폐가 되었다. 정부 신용만으로 통용되어야 했다.

남부도 종이돈을 찍었다

남부 연방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861년 3월 남부 연맹이 발행한 첫 번째 종이돈은 이자를 지불했으며 총 유통량은 100만 달러였다.

하지만 남부는 처지가 달랐다. 남부 연맹의 지폐는 단단한 자산으로 뒷받침되지 않았으며, 남부의 승리와 독립을 기대하고 전쟁 후 지불하겠다는 약속만으로 유통되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남부의 승리 가능성이 보일수록 그 가치는 폭락했다.

종이돈의 가치는 전쟁의 흐름을 따랐다

북부의 그린백도 변수가 있었다. 1862년 그린백은 금에 대해 계속 가치를 잃어 12월에는 금의 프리미엄이 29%에 달했다. 하지만 게티즈버그에서의 연방군 승리 이후 그린백은 금 100달러에 대해 131달러의 가치로 회복했다.

전쟁이 정부의 신용도였다. 북부가 이길 것으로 보이면 종이돈 가치가 올랐다. 남부는 멸망으로 향했고, 남부 종이돈은 휴지가 되었다.

근현대의 시작

이 사건은 단순히 비상 대책이 아니었다. 그린백은 연방을 즉각적인 금융 파산으로부터 구했으며, 전쟁 기간 채권 판매를 부양했고, 미국의 화폐 시스템을 통일했다. 무엇보다 이것은 근현대 경제의 기초를 닦았다.

1862년의 그린백은 귀금속으로 뒷받침되지 않았으며, 정부의 '완전한 신용과 신용'을 기반으로 한 현대 화폐 체계를 예견했다.

우리에게 남긴 교훈

남북전쟁은 미국을 갈랐지만, 역설적으로 경제 시스템을 통일했다. 전쟁 전까지 미국은 5,000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은행권이 떠돌아다녔다. 혼란스러웠고 비효율적이었다.

때로 위기는 변화의 계기가 된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통일된 화폐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 기축통화가 된 달러는 남북전쟁 전장에서 탄생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비상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때 우리의 선택이 역사를 만든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 정부의 종이돈 발행은 옳은가 그른가를 지금 판단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나라를 구했고,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기자 |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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