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0억원 투입한 중국 블록버스터 '봉신연의: 조가풍운' - 3000년 전 상나라 몰락을 그린 동양 판타지의 원류
중국 최대 제작비로 완성된 '봉신연의: 조가풍운'을 통해 상나라 마지막 왕 주왕과 여우요괴 달기의 이야기, 그리고 실제 중국 고대사의 흥미로운 진실을 파헤쳐본다.
중국 영화 역사상 최대 제작비로 완성된 동양 판타지
중국에서는 2023년 7월에, 한국에서는 2024년 1월에 개봉한 '봉신연의: 조가풍운'은 우얼샨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중국 고대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를 다룬 역사 영화이기도 하다. 26억 3500만 위안(한화 약 4809억 원)을 벌어들이며 2023년 중국 박스오피스 5위를 차지했으며, 총 제작비는 30억 위안, 한화로 환산하면 5,400억 원 정도로 개봉 시점에서 중국 영화 역사상 최대 제작비라고 한다.
공들여 지은 세트와 정교한 의상, 그리고 웅장한 스케일만큼은 대륙의 기상을 보여줄 만큼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황보나 왕락용 등 조연을 맡은 기존 유명 배우들뿐 아니라,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신인 주연배우들의 연기도 전반적으로 준수했으며, 주왕 역의 페이샹은 6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화 300처럼 상당한 근육질 몸매를 선보이며 타락한 영웅을 외적으로 훌륭하게 소화해냈고, 달기 역의 나란은 경국지색에 걸맞은 외모뿐 아니라 실제 여우를 모션캡쳐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동물적인 움직임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영화 속 상나라 마지막 왕 주왕의 몰락 이야기
영화에서 은수(주왕) 역을 맡은 크리스 필립스/비상(페이샹)은 상나라의 왕으로, 기주후 소호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만큼 뛰어난 지략과 공정함을 갖춘 용맹한 무장이었으나, 형 은계 때문에 왕위 계승 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으며, 이후 달기의 유혹에 빠져 부정한 방법으로 왕위에 올라 폭정을 행한다. 왕자 은수가 양자들과 함께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왕좌를 차지하지만 기주후 소호의 딸 달기를 후궁으로 맞이하면서 폭군이 되고 만다. 은수의 천륜을 저버린 만행과 폭정으로 하늘이 노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달기라는 캐릭터다. 반란을 일으킨 기주후 소호의 딸로, 상나라 군대에게 잡혀갈 위기에 처하자 자결하지만, 여우 요괴에게 빙의당해 살아난다. 이 여우 요괴는 상나라의 선조 성탕이 헌원묘에 봉인한 것으로, 오직 성탕의 자손이 흘린 피만이 봉인을 풀 수 있었는데, 작중 주왕 은수가 흘린 피가 봉인에 떨어져 여우 요괴가 풀려나고 만다. 산 중턱에서 펼쳐진 반란군과 진압군의 혈투 가운데 이 산에 봉인된 요괴가 깨어나 달기의 몸에 들어간 것이다. 승리를 거둔 진압군이 포로로 잡은 달기는 실은 인간을 해치는 여우요괴로, 그는 달기의 몸으로 은수에게 접근해 그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즉, 적자가 아닌 그에게 천하를 주겠다는 약속이다.
곤륜산의 원시천존은 천벌이 내려진 인간들을 구할 봉신방을 강지아에게 주어 인간계로 보낸다. 사대 백후를 제거한 은수에게 마계가 동참하고, 마침내 신계와 인간계 그리고 마계의 전쟁이 일어난다. 은수의 왕위 찬탈로 천벌이 내려지고 곤륜산의 12천존은 인간계 '천하의 주인'에게 봉신방을 건네 세상을 다스리게 하려고 한다. 용의 입에서 나온 봉신방은 그냥 뼈다귀 내지는 막대기처럼 생겼는데 이 마법의 지팡이는 죽은 자-정확히는 선인(仙人)-의 원기를 흡수해 봉신방의 주인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영화와 실제 역사의 흥미로운 대조
영화는 판타지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실제 중국 고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다룬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은 즉위 후 달기라는 미녀에게 빠지고 폭정을 실시했으며, 마지막 왕은 무희 달기와 함께 백성을 잔혹하게 다룬 30대 주왕이며, 주나라 시조인 서주 무왕에 의해 멸망하였다. 중국의 하상주단대공정은 이 사건을 기원전 1046년의 일로 보고 있다.
19세기 말까지 전설상 왕조로만 다루었으나 20세기 초 은허가 발굴되고 고고학적 증거가 나타나면서 실재하는 왕조로 인정했다. 출토된 청동기나, 갑골문자를 독해함으로써 선사 사회부터 역사시대로 옮겨진 은나라 사회의 실태가 해명되기에 이르렀다. 갑골문자를 통해 스스로 문자 기록을 남긴 최초의 왕조이기도 하다. 갑골문자는 거북이 등딱지나 짐승의 뼈에 새긴 상형 문자로, 나라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점을 치고, 그 내용을 새겨넣은 글 등이다.
영화에서 흥미롭게 묘사되는 것은 상나라의 정치 제도다. 초기 봉건국가인 상나라는 제후들을 통제하기 위해 그들의 아들을 볼모로 도성에 잡아두는 정책이 있었는데, 그 아들들을 백인장으로 훈련시켜 이뤄낸 부대가 바로 양자부대인 것이다. 후에 주왕이 되는 왕자 은수가 볼모로 보내진 제후의 자식들을 제 양자로 삼은 게 그 이름의 이유다.
달기와 주왕의 관계도 역사적 기록과 일치한다. 주왕과 달기의 관계는 하나라 걸왕과 말희와 매우 유사하며, 달기는 주왕이 정벌한 주변국인 '유소씨'를 토벌하고 전리품으로 받은 미녀로 알려져 있다. 후일 이에 시들해진 달기를 위해 포락지형을 시행했다. 이는 죄인들에게 기름을 바른 구리 기둥을 맨발로 걸어가게 하여, 끝까지 걸어가면 죄를 면해주는 형벌이었다. 이 기둥들 밑에는 뜨거운 숯불이 피어져 있었는데, 달기는 뜨겁고 미끄러운 구리 기둥 위를 공포에 질린 채 걷다가, 몇 발자국 남기고 넘어져 살이 타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주왕은 이러한 행위를 말리는 충신들을 죽여 젓을 담그고 포를 떴다고 한다. 가장 놀라운 건, 간언하는 충신의 심장을 갈래서 꺼내고, 임산부 배에 있는 태아의 성별을 알아맞추는 내기를 위해 임산부를 잡아와 배를 갈랐다는 점이다.
동양 판타지 원류를 스크린에 구현한 야심작
봉신연의는 중국의 고전소설로 명나라때 지어졌다. 상나라의 폭군 주왕과 그를 타도하기 위해 봉기한 주나라 무왕의 싸움을 그린 소설로, 분류로는 신마소설에 속한다. 『봉신방』, 『상주열국전전』 등으로도 불리며 저자는 육서성(陸西星:1520∼1605?) 또는 허중림이라고 전해지나 분명하지 않다. 또한 육서성이나 허중림 본인의 순수창작보다는 송원대에 나온 『무왕벌주평화』 같은 '무왕벌주'에 대한 민담과 대본을 각색한 것에 가깝다.
상나라와 주나라 교체기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당대의 신선과 요괴들이 총출동해 싸우는, 말 그대로 괴력난신 쟁투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피터 잭슨 감독이 툴킨의 판타지 대작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한 것처럼 이 동양풍 판타지의 원류에 해당하는 작품을 영화화할 욕심은 영화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봄 직했다. 그리고 꿈을 이뤘다.
이 영화, 한눈에 봐도 돈을 쏟아부었다. 특수촬영 기술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주류를 이뤘던 20세기 중후반에는 꿈도 못 꿨을 장대한 스펙터클을 CG 기술을 통해 완성했다. 특히 영화 초반 기주성 대규모 전투 장면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연상시킬 정도로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며 시원한 전개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
첫째, 중국 고대사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문왕의 아들 무왕이 45,000여 명의 군대와 300여 개의 전차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 목야 전투에서 상나라 왕 주왕을 몰아내고 중국 전역을 차지했으며, 무왕이 죽은 이후 주공 단과 성왕의 시대에 통치 체계가 완성되었다. 이는 중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왕조 교체 중 하나였으며, 이후 800년간 지속된 주나라의 기틀이 되었다.
둘째, 동양 판타지의 원조격인 작품을 제대로 영상화한 보기 드문 사례다. 제18회 중국 창춘 영화제 연출상 수상 및 5개 부문 노미네이트, 2023 및 2024 웨이보의 밤 4개 부문 수상 등 수많은 유수 영화제의 사랑을 받았으며, 2023 Shanghai Film Critics Awards 역대 중국영화 TOP10 선정,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도 선정되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자국을 포함하여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에 먼저 개봉되며 '왜 더 일찍 안 봤는지 후회했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 '스토리와 완성도 측면에서 중국 판타지물에 역사적 의미를 남기게 될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셋째, 역사와 판타지의 절묘한 조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영화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신선, 요괴, 마법의 지팡이 등 판타지 요소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특히 권력의 타락과 그에 따른 응보라는 인간 보편의 주제를 3000년 전 중국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통해 웅장하게 그려냈다.
결국 이 영화는 단순한 중국 블록버스터를 넘어, 동양 문명의 뿌리 깊은 이야기와 인간 욕망의 본질을 탐구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54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제작비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동시에 제공하는 영화다.
기자: 추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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