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로 스러진 천재의 영혼, 에곤 실레: 오스트리아 표현주의가 남긴 가장 거칠고 순수한 울음
28년 생에 10년 활동으로 유화 334점, 드로잉 2503점을 남긴 에곤 실레. 클림트의 제자에서 벗어나 오스트리아 표현주의를 대표한 거장의 생과 예술, 빈에서 만나는 그의 작품 세계를 탐험한다.
28세의 단명한 천재, 에곤 실레가 남긴 2503장의 비명
혹시 '가난하고 아팠던 화가'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나요? 더 정확하게는 '짧고 격렬했던 생'을 산 화가 말이에요. 오스트리아 빈의 표현주의 거장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딱 그런 화가랍니다.
28년의 짧은 생애와 10년 남짓한 활동 속에서도 334점의 유화와 2503점의 드로잉을 남기며 오스트리아 표현주의를 대표했습니다. 한 해에 평균 250장 이상을 그렸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정말 어마어마하지 않나요? 이것만 해도 이 화가가 얼마나 불타오르는 내면세계를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클림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다: 자신의 길을 찾은 반항의 천재
에곤 실레는 1890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툴른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실 실레를 이해하려면 '클림트'라는 거인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어요. 20세기 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실레의 멘토였거든요.
하지만 여기가 중요한 지점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1906년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나, 아카데미의 보수적 학풍과 교수에 반발하여 3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몇몇 동료들과 '새로운 예술가 그룹'을 결성하였고, 이 무렵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나 많은 교류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실레의 결심입니다. "나는 클림트를 통과했다"고 선언하며 예술가의 주관적 감정과 실존적 불안을 표현하는 표현주의라는 새로운 길로 나아갔습니다. 아, 멘토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완전히 거부하는 용기. 그게 바로 예술가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거칠고 뒤틀린 육체에 담은 인간의 영혼
실레의 그림을 처음 보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뒤틀린 신체 형태와 표현적인 선은 그를 표현주의의 초기 주창자로 각인시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클림트의 장식성과는 정반대예요. 그는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죽음, 내밀한 성적·관능적 욕망, 공포와 불안 등을 육체의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로 거칠게 묘사하였습니다. 마치 영혼의 내면이 육체를 뒤틀어놓은 듯한 느낌 말이에요.
특히 그의 작품은 강렬함과 노골적인 성적 표현, 그리고 나체 자화상을 포함한 수많은 자화상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빈 사회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을 터예요.
짧은 생, 그러나 불타오른 영혼
1912년 연인 발리 노이칠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 노이렝바흐에 머물던 실레는 미성년자 유괴 및 추행 혐의로 체포되어 24일간 투옥되는 시련을 겪습니다. 예술이 곧 고난이었던 시대, 그렇지만 실레는 굴하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는 1915년 에디트 하름스와의 결혼이 실레의 화풍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초기 작업을 지배하던 에로티시즘과 날카로운 시선 대신 가족애와 모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실레의 아내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하였고, 아이와 아내를 동시에 잃은 실레도 독감에 감염되어 3일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18년 10월 31일, 실레는 28세의 나이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빈에서 실레를 만나는 방법
빈 여행 중 실레의 예술을 직접 만나고 싶다면?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레오폴트 미술관에는 실레의 가장 중요하고 완벽한 작품 컬렉션이 소장되어 있으며, 200점 이상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실레의 다른 주목할 만한 소장품으로는 툴른의 에곤 실레 박물관, 빈의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과 알베르티나 그래픽 컬렉션이 있습니다.
미술사가 재평가한 오스트리아의 거장
재미있는 사실은 실레가 생전에는 물론, 사망 후에도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천재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인 에곤 실레의 미술 세계는 각각 1960년대와 198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영국과 미국의 미술관에서 처음 소개되었을 정도로 심한 외면을 받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달라요. 최근 국제 미술시장에서 실레의 작품이 급상승하고 있거든요. 그 때문일까요? 빈의 미술관들에서 실레 전시회는 항상 관심 높은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다'
실레가 남긴 명언 하나를 꼭 소개하고 싶어요.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이며, 그것은 싹트는 생명을 살해하는 행위다." 생각해보니, 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울림이 있네요.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할 때, 화려한 궁전과 우아한 카페하우스도 좋지만, 한 번은 이 격렬했던 영혼의 작품 앞에 서보세요. 아름답기보다는 거칠고, 우아하기보다는 생생한—그것이 에곤 실레가 남긴 것이니까요. 가곡의 왕 슈베르트: 31세로 스러진 천재, 오스트리아 빈의 가슴 아픈 음악 유산처럼, 빈은 천재들의 고뇌와 열정이 스며든 도시랍니다.
기자: 최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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