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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그라츠: 중세의 벽돌 위에 현대미술이 피어난 도시, 몰라도 되는 보석

빈의 화려함을 모르는 한국인들을 위해, 오스트리아 제2도시 그라츠를 소개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시가지, 친근한 외계인 쿤스트하우스, 우주의 조화를 담은 에겐베르크 궁전까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도시의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김진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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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그라츠: 몰라도 되지만 꼭 알아야 할 도시의 매력

빈, 잘츠부르크에 밀려 늘 3등 신세지만, 실은 유럽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시 중 하나죠. 그게 오스트리아의 제2도시 그라츠(Graz)입니다. 혹시 이 이름이 낯설다면? 완벽합니다. 그만큼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진짜 보물이 숨어있다는 뜻이니까요.

중세와 현대가 춤을 추는 도시, 그라츠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그라츠는 슈타이어마르크주의 주도입니다. 빈에서 남쪽으로 특급 기차 '레일젯'으로 약 2시간 반이면 도달하는 거리죠. 하지만 빈의 웅장함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이 그라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빨강 기와지붕이 늘어선 구시가지는 지금도 중세시대 때의 공기를 짙게 남겼습니다. 15세기, 16세기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죠.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중세의 거리 한복판에 현대미술이 불쑥 튀어나온다는 거예요.

'친근한 외계인'이라 부르는 이유

그라츠 사람들은 자기네 도시의 현대미술관을 재미있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를 '친절한 외계인'이라고 부릅니다 이 건물은 그라츠가 유럽 문화의 수였던 2003년에 거대한 물방울처럼 도시에 상륙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건물은 매우 이상합니다. 영국의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얼핏 중세 도시 한복판에 착륙한 검은 외계 생명체 같습니다. 쿤스트하우스의 외관은 1,066개의 유리판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외계인의 피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더 신기한 건? 쿤스트하우스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건물 외부에서 매시 50분마다 5분씩 초저음의 진동소리가 나는데 이는 '친근한 외계인'이 내는 소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밤에 방문하면 더욱 좋습니다. 아름다운 조명이 쿤스트하우스를 가득 에워싸기 때문에 반짝이는 쿤스트하우스의 외관을 밤에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산 위의 시간 여행: 슐로스베르크와 시계탑

그라츠의 랜드마크이자 제1의 관광 포인트는 그라츠 산성(Schlossberg)과 시계탑(Uhrturm)입니다. 도시 한복판에 해발 473m 높이로 솟아있는 산성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곳으로, 12세기에 슬라브인들에 의해 요새화됐고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손상됐으나 재건돼 현재는 그라츠 도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징적인 명소가 됐습니다.

산성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인 시계탑은 1561년에 세워졌습니다. 올라가는 방법도 재미있죠. 성에 올라가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걸어서, 레일열차로, 엘리베이터로. 내려오는 것은 네 가지입니다: 올라가는 방법 세 가지에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주장하는' 미끄럼틀이 추가됩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중세 도시의 빨간 지붕들은 정말 인생사진 명소입니다.

우주를 모티브로 지어진 궁전: 에겐베르크

그라츠에서 가장 신기한 건축물은 따로 있습니다. 한스 울리히 폰 에겐베르크 후작이 중세 성을 바탕으로 1623년 거성으로 지은 에겐베르크 궁전입니다.

이 궁전은 단순한 성이 아닙니다. 이 성은 천문학과 점성술의 영향으로 우주의 조화를 구현한 특이한 건축물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습니다:

성에는 365개(1년의 날 수)의 창문, 층별로 24개의 방(하루의 시간), 52개(한 해의 주 수)의 문이 있습니다. 2층에 실제로 가동할 수 있는 방의 수는 31개인데 이는 한 달의 날 수입니다.

이건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라,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우주 백과사전인 셈이죠. 마리아 테레지아 부부도 사랑했다고 전해지는 아름다운 정원과 공원은 사계절 내내 시민들의 휴식처입니다.

미식의 수도, 그리고 와인

그라츠는 비엔나에 이어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동시에 아는 이들만 아는 미식의 수도이기도 합니다. 미식의 수도답게 식도락 행사도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그라츠의 진짜 강점은 와인입니다. 오스트리아 남부 슈타이어마르크(스티리아)는 동화 속 그림 같은 초록빛 구릉이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와인 산지입니다. 슈타이어마르크는 소비뇽 블랑으로 유명하지만, 이외 환상적인 화이트 와인이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습니다.

슈타이어마르크는 오스트리아의 토스카나로 불릴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빛 구릉이 펼쳐지는 와인 산지입니다. 그라츠에서 와인을 마시면, 빈에서의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여행자를 위한 한 마디

그라츠의 구 시가지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하지만 관광객이 몰려 있지 않아서 올드 타운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해 그라츠의 많은 지역이 보행자 전용으로 운영되며 걷기에 편합니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서 느꼈던 화려함도 좋지만, 그라츠에서 맛보는 건 진짜 오스트리아의 숨결입니다. 중세 도시의 골목에서 현대미술을 마주치고, 산 위 시계탑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그라츠 와인잔에 현재를 담아 마신다면—당신은 진짜 오스트리아를 이해하게 될 거예요.

빈, 잘츠부르크만 알고 가지 말고, 이번엔 그라츠 표를 끊어보세요.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친근한 외계인'이 곧 당신의 새로운 오스트리아 기억이 될 테니까요.


작성: 김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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