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종이가 세상을 흔들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15세기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 발명이 어떻게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촉발하고 지식 혁명을 일으켰는지, 그리고 그 교훈이 현대에 주는 의미를 살펴본다.
한 장의 종이가 세상을 흔들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불가능하다던 꿈을 현실로 만들다
1455년, 독일의 한 작은 도시에서 사소해 보이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약 1440년경에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독일의 금 세공업자였다. 그의 성서는 1452년에 시작하여 1455년에 완성됐는데, 이 성서는 한 페이지가 42줄의 2단으로 이루어져 '42행성서'라고 한다.
무엇이 그렇게 특별했을까. 그 전까지 책은 사제나 수도사의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하는 방식으로만 만들어졌다. 한 권을 완성하려면 몇 개월이 필요했다. 책은 소수의 귀족과 교회만 소유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기술과 집념이 만난 순간
구텐베르크는 마인츠의 조폐국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 활자 기술을 창안하고, 금화와 은화의 초상화 도안을 찍어내는 펀치에다 글자를 거꾸로 새겨 철판에다 찍어 형틀을 만들고 그 위에다 철로 만든 주조기를 덧씌워 납과 안티모니, 주석 합금을 부어 주조하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이 방식은 철로 만든 형틀 및 주조기를 쓴 덕분에 수천 번을 주조해도 모양과 크기가 일치했고, 조판과 활자에 서로 요철을 만들어 꽉 물리게 하는 방식을 썼으므로 수백 장을 찍어도 활자가 밀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는 포도주를 짤 때 사용하는 압착기를 개조하여 근대적 인쇄기계를 만들었다. 기존의 목판 인쇄와는 완전히 달랐다. 구텐베르크 인쇄기의 속도는 필사에 의존하던 기존의 방식과 비교하면 혁명적으로 빨랐다.
책의 홍수, 정보의 민주화
그 결과는 놀라웠다. 활자 인쇄술은 급속히 퍼져서 1450년부터 1500년까지 50년 동안 3만 종의 책을 총 2,000만부 인쇄했다. 이는 이전 1천 년 동안 출판된 책보다 더 많은 양이었다.
책의 가격도 크게 내려갔다. 구텐베르크 성서 복사본은 권당 30플로린에 팔렸는데, 이는 일반 점원의 약 3년치 임금이었으나, 그럼에도 서기가 필사하는 데 1년 이상 걸리는 원고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촉발하다
인쇄술을 통해 유럽 전역에 책이 대량으로 퍼지게 되었고, 이를 두고 정보 혁명이 일어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종교개혁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기 위해 95개조 반박문을 써서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문에 붙였는데, 이 글은 활판 인쇄술에 의해 대량으로 인쇄되어 두 주 만에 독일 전역에, 두 달 만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 개인의 목소리가 대중에게 닿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전까지 소수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지식에서 소외되었던 대중 속에 급속히 전파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역사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구텐베르크는 약 180여 권의 성경을 인쇄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를 위해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법정에까지 서게 되었고, 정작 자신이 발명한 인쇄술로 지식 혁명을 촉발했지만 그는 돈을 벌지 못했다. 재판에서 패소한 그는 1468년 2월 3일 가난에 시달리다 쓸쓸히 생을 마쳤다.
혁신의 선구자는 종종 그 혁신의 혜택을 자신이 누리지 못한다. 하지만 구텐베르크가 깨달아야 했던 진실은 이것이다: 정보의 힘은 개인의 부(富)에 있지 않고, 대중의 깨어남에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무한의 인쇄소 앞에 선 우리들은 구텐베르크의 이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정보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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