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명의 가해자를 역사의 법정에 세운다 - '반헌법행위자열전' 10년의 기록
10년간의 시민 후원으로 완성된 '반헌법행위자열전'이 출간되었다. 현실의 법정에서 처벌받지 못한 국가폭력 가해자 312명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공소장이다.
10년의 기다림, 312명의 이름을 부르다
2015년부터 10년간 준비한 '반헌법행위자열전'이 4월 출간된다. 이는 단순한 책의 출간이 아니다. 현실의 법정에서 제대로 처벌받지 못한 국가폭력 가해자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역사적 공소장의 탄생이다.
박사급 연구자들이 주도한 조사위원회 회의만 2026년 3월까지 540여 차례에 달한다. 매주 한 번씩 10년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 방대한 작업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 없이 오직 시민들의 후원금으로만 이뤄졌다는 점이다.
역사의 법정이란 무엇인가
법정형에는 공소시효가 있지만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있을 수 없죠. 반헌법 행위자 열전은 뒤늦게나마 이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기 위한 공소장입니다.
역사의 법정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이는 현실의 사법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곳에서 역사 자체가 심판자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과거사 정리에서 기존 과거사 정리는 피해자 중심으로 진행돼 사건의 진상은 밝혀졌지만 가해자 특정이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반쪽짜리 결론이 반복됐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가해자를 특정하고 행적을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국가폭력의 책임 주체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기존 작업과 차별화됩니다.
친일인명사전의 선례와 역사적 의미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식민통치·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물리적·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친일반민족행위와 부일협력행위를 한 인물 중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서 선정한 4,389명을 수록한 사전이다라고 정의되는 '친일인명사전'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
1999년 8월 11일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전국 대학교수 1만인 선언'을 기반으로 2001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편찬 사업을 시작하였다. 2004년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운동으로 편찬 기금을 마련하였으며, 2009년 친일문제연구총서 중 인명편 3권으로 출간하였다.
친일인명사전이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자들을 '겨레의 법정'에 세웠다면, 반헌법행위자열전은 해방 이후 반민주적 행위자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것이다. 이는 마치 '친일인명사전'이 반민족행위자를 겨레의 법정에 세웠던 것처럼. 따라서 '열전'은 우리 현대사에서 그 어떤 기록보다도 값진 책자라고 볼 수 있다.
권력의 법복과 시민의 기록
권력은 늘 법복을 입고, 헌법을 입에 올리며, 국가안보를 외치면서 인권을 짓밟아왔다. 그 패턴을 낱낱이 기록해 두지 않으면,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그것도 더 교묘하게.
특히 주목할 점은 전체 대상 가운데 판사와 검사 등 법조인의 비중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입니다. 헌법을 가장 잘 알고 수호해야 할 위치에 있는 '법 기술자'들이 오히려 헌법을 유린하고 파괴하는 최일선에 섰던 거죠.
2권 〈법원 편〉에는 대법원장 세 명이 포함된 정치판사 27명이, 3·4권 〈법무·검찰 편〉에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지낸 인물들을 포함한 정치검사 49명이 수록된다. 이들은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의 역할을 저버렸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반복
열전 수록 312명 중 44명은 친일 경력이 확인된다. 일제 강점기에 권력에 복무하다가 해방 후에도 그대로 대한민국 권력기관에 흘러들어와 다시 국민을 짓밟았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예시다.
이러한 역사의 연속성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12.3 내란이 이뤄졌을 때, '전두환이 집에서 죽은 게 윤석열의 내란을 가져왔다'는 얘기가 있었다. (전두환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다. (이밖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처벌받지 못했다. '그들을 형사처벌하진 못했지만 역사의 법정에 세우자.' 그게 출발이었다'.
미래를 위한 예방서
그렇다면 지금 이 『반헌법행위자열전』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이 책은 단순히 나쁜 사람들의 명단을 모아놓은 고발장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예방서다.
'공자가 춘추를 지으니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았던 가해자의 행적,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만으로 역사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헌법과 인권을 유린할 때, 시민들은 이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글 : 추익호
loading...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