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8 min read

이란대사가 국회에서 한국에 던진 냉정한 현실: '미국 기업과 거래한다면 통행 불가'

주한이란대사가 국회 면담에서 밝힌 호르무즈 해협 통과 조건.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선박은 통행 불가하다는 쐐기 발언.

박진희기자
공유

한국에게 던져진 냉혹한 현실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가 25일 국회에서 외교통일위원장인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과 면담하면서 던진 말은 우리에게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했다. '이란이 미국·이스라엘을 제외한 국가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허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해협에 머물고 있는 한국 선박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쿠제치 대사는 "한국 선박의 제원 정보를 사전에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조건이 뒤따랐다.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쿠제치 대사는 '한국이 이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미국 기업이 투자한 유전 시설을 이용할 경우 현재 항해가 불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미국 기업들과 거래하고 있는 기업들은 전시 상황에서 제재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점

필자는 이 발언을 듣고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엔 한국 선박 26척이 묶여 있는 상태이고, 외국 국적 선박에 승선한 인원을 포함하면 총 179명의 한국 선원이 발이 묶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안전이 가장 우선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도 직시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핵심 파트너인 미국과의 경제적 연결고리를 끊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가스 물동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수송로로 유조선 통행이 가능한 구간은 모두 이란 영해에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상당 부분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및 유럽 국가로 수입된다.

균형 외교의 진정한 의미

이란대사의 이런 발언은 우리에게 균형 외교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게 한다. 쿠제치 대사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 통과 조건은 전반적으로 지역의 시 상황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이미 큰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이에 상응하는 대응이 뒤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논리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3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통화하며 호르무즈해협 내 우리 선박의 안전을 요청했고, 외교부는 "양측은 관련 사안에 관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소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선택의 기로에 선 한국

필자가 보기에 이번 상황은 우리 외교의 역량이 진정으로 시험받는 순간이다. 이란 외교부는 지난 22일자로 IMO 회원국들에 보낸 서한에서 "이란에 대한 침략 행위에 참여하거나 이를 지원하지 않는" 국가의 선박, 또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선박들은 이란 당국과 협의한 후 호르무즈를 통항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 기업들 중 미국 기업과 전혀 거래하지 않는 곳이 얼마나 될까?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힌 오늘날, 이란의 조건을 완전히 만족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앞으로의 과제

쿠제치 대사는 "우리 국민들이 원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나갈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말하며, "한국을 포함해 국제 사회가 함께 노력해서 중동 지역에 다시 평화가 오도록 함께 노력해주면 고맙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핵심은 '평화'라는 키워드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중동 지역의 평화 정착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국민과 선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중동 평화를 위한 건설적인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더 이상 강대국들의 갈등 속에서 안전지대에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본다.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 우리에게는 더욱 정교하고 전략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모든 외교적 노력의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자: 박진희" }

loading...

loading...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