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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서 브로드웨이까지: 20세기 미국이 만든 새로운 무대 예술의 탄생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뮤지컬이 20세기 미국으로 건너가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완성되기까지의 흥미로운 변천사를 알아본다.

이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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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문화에서 대중의 예술로

19세기까지 유럽의 오페라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부자가 된 시민지도층이 이전의 귀족들과는 다른 예술을 원했다. 바로 이런 시대적 요구에서 뮤지컬이 탄생했다.

뮤지컬 하면 미국의 브로드웨이가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작은 19세기 영국에서다. 19세기 말 경제적·정치적 부강을 누리게 된 영국은 오락물을 급조하게 되었는데, 그때 붙여진 이름이 뮤지컬 화스(Musical farce)였다.

큰 틀은 오페라의 형식을 따서 스토리 전개를 위한 연극적 요소와 재미와 즐거움을 위한 춤과 쇼적인 요소를 결합한 형태로 만들어갔다. 오페라와 뮤지컬의 다리 역할을 한 것이 오페레타인데 오페레타는 작은 오페라라는 뜻으로, 오페라가 역사, 신화, 귀족들에 대한 이야기에 정통 클래식 성악가들이 노래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오페레타는 일반 시민들의 일상이야기를 스토리 삼고, 연극과 같은 대사와 춤이 많이 가미된 코믹한 스토리였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영국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코메디'가 미국으로 건너가 뿌리를 내리면서 본격적인 양식으로 형성된다. 유럽 출신 이민의 예능인들이 이러한 미국적 연예양식과 비인 오페레타를 연결시켜 만들어낸 것이 뮤지컬이다. 대체로 미국 뮤지컬의 형성은 세 줄기, 즉 프랑스의 오페라 부프, 영국의 코믹 오페라, 독일어권의 비인 오페레타 등에 연원을 두고 있다.

버라이어티 쇼, 보드빌, 민스트럴 쇼 등 여러 가지 다양한 대중 오락극의 요소가 결합되면서 20세기 미국에서 낙천적이고 유쾌한 장르로 대중적 인기를 모으며 크게 성행했고 '현대 뮤지컬'로 발전해나갔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대공황을 겪으면서, 대중들은 낙천적이고 유쾌하고 오락적인 문화를 갈망했는데, 바로 그런 대중의 정서에 맞는 낙천적이고 오락적인 뮤지컬이 대중예술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황금시대의 완성

1927년 12월 27일 지그펠드 극장에서 초연된 쇼 보트(Show Boat)는 대본과 음악의 통합으로 극적인 테마를 음악, 대화, 배경과 동작을 통해 전달하여 이전에 비해 뮤지컬의 완성도를 훨씬 높였다. 대공황 시기 이후, 브로드웨이 연극은 블록버스터 연극 오클라호마!(Oklahoma!)를 통해 황금시대에 접어들었다. 오클라호마!는 1943년 제작되어 무려 2,212회의 공연 기록을 세웠다.

제롬 컨이 만든 쇼 보트(1928)를 시작으로 음악과 노래와 춤이 이야기 구성과 등장인물의 발전에 더욱 세심하게 통합되면서 가장 성공적인 상업연극이 되었다. 1931년에는 《너를 노래한다》가 퓰리처상을 수상함으로써 정식 연극의 장르로 인정을 받았고, 1943년에 공연된 《오클라호마》는 2000회가 넘는 장기공연에 성공함으로써 국민적 장르로 자리 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20세기 후반부터 뮤지컬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겸비하며 <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과 같은 작품들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오페라에서 시작된 뮤지컬의 여정은 하나의 사실을 보여준다.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신흥 부유층은 기존 귀족 문화와 다른 것을 원했고, 뮤지컬이 그 답이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어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뮤지컬은 또한 '융합'의 힘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대중적 노래 창법, 다양한 악기의 반주, 스토리를 주도하는 대사, 배우들의 연기 다양한 춤이 함께 어우러져서 뮤지컬로 발전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예술 장르가 만나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 것들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다. 뮤지컬의 탄생이 그것을 증명한다.


기자: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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