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대통령 책임론'과 재선거 거리두기…투표용지 부족 사태, 정치 지형 흔들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하며 선관위 해체 수준의 개혁을 촉구했다. 국민의힘의 당초 재선거 요구와 달리 당선 후 톤이 바뀐 정치권의 이중적 반응이 주목된다.
'투표용지 부족', 정치권의 광연(光淵)을 드러내다
누구나 한 번쯤 서툰 준비로 중요한 일을 망쳐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나라의 선거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6·3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대대적인 개편을 요구했습니다.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정치권 최고 실력자의 신임장을 받은 자의 무거운 목소리입니다.
투표용지 부족, 무엇이 일어났나
지난 3일 시행된 지방선거는 진정한 '초유의 사태'를 낳았습니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서울 송파구 14개를 포함해 50개소로 조사됐지만, 22개 투표소에서는 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일시 중단됐다 재개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문에 큼지막이 나올 법한 개발도상국의 사건이, 대한민국 최대 도시에서 벌어진 겁니다.
당신의 한 표가 투표 순서 때문에 '없던 것'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입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분노, 그리고 불신입니다.
선관위가 한 선택, '생각보다 아찔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대체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선관위가 투표용지 인쇄 물량을 비정상적으로 최소화했던 이유는 과거 선거 이후 잔여 투표용지가 유출되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제기됐던 것을 의식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는 투표용지를 줄이기 위해 선거인 수의 약 50% 분량만 선제 인쇄해 투표소에 배정했는데요, 정작 본투표 당일 유권자가 예상보다 많이 몰리면서 준비된 용지가 바닥나는 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아이러니 아닌가요? 부정선거 의혹을 피하려다 더 큰 의혹을 자초한 겁니다.
오세훈의 대통령 책임론, 무엇이 다른가
지방선거 당선인 오세훈은 강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하지만 그 화살이 의외의 방향을 향했습니다.
오 시장은 전날 TV조선 뉴스9에 출연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참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대통령도 정말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당시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며 "지금 마치 선관위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것처럼 모양이 돼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모두 대통령 책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선관위 해체와 재구성을 촉구하던 그 사람이, 이제는 청와대를 겨냥합니다. 국무회의 참석 후 대통령과 만나 "민심을 전달하겠다"는 발언도 흥미롭습니다. 정치의 온도 조절, 아니 정치의 정석을 보는 느낌입니다.
재선거 요구,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정치권의 입장 변화가 극적입니다.
선거 당일, 장동혁 대표는 독일이나 미국 판례에 비추어도 당연히 선거 무효 사유라면서 선거를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강력하게 재선거를 주장했습니다. 이전에 다룬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도 이 목소리는 정점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세훈이 당선인이 되자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원내소통수석부대표는 "선관위의 잘못은 철저히 따져묻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선거는 감정이 아니라 법과 절차,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당초 재선거를 주장했던 국민의힘이 이제 (선거에서 승리한 상황에서) 뭐라고 할 것인지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했습니다.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정치란 결국 이런 것일까요.
법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투표용지 부족은 공직선거법상 선거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으며, 선관위 측은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개표 연기나 중단 또한 불가하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법정 절차와 정치적 요구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있습니다.
이 사태가 중요한 이유
투표용지 부족은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참정권이 흔들렸다는 신호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참정권 침해이자 헌정 질서 훼손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깊은 말입니다.
당신이 한 표를 제대로 던질 수 없는 나라. 지난 며칠간 벌어진 개표소 봉쇄 시위처럼, 이런 신뢰 붕괴는 더 큰 혼란을 낳습니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우리가 잃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입니다.
오세훈은 "선관위 해체 수준의 개혁"을 외쳤습니다. 그 목소리가 실제 변화로 이어질까요? 아니면 정치의 소음으로 사라질까요? 답은 우리가 지켜봐야 할 몫입니다.
민주주의는 한 번 손상되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그 회복의 첫 걸음은 투명함과 책임입니다. 누구를 향한 책임이든 말입니다.
글: 오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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