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아픔과 영광이 교차하는 한국 현대사 - 노근리의 상처와 인천공항의 희망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의 아픔을 기억하고, 대한민국 발전의 상징인 인천국제공항 개항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역사 이야기
3월 29일, 아픔과 영광이 교차하는 한국 현대사
여러분, 혹시 3월 29일이 어떤 날인지 아시나요? 이 날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슴 아픈 상처와 자랑스러운 성취가 함께 새겨진 특별한 날이랍니다. 오늘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모습을 함께 살펴볼까요?
한국전쟁의 잊혀진 상처, 노근리 사건
1950년 6월 25일, 조선인민군이 한반도 통일을 시도하며 남한을 침공하여 6.25 전쟁이 발발했고, 학살은 1950년 7월 26일부터 7월 29일까지 4일간 이어졌으나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상 때문에 한동안 조명되지 않았다가 1999년 AP통신 기사를 통해 한-미 양국에 공론화되었다는 사건이 바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입니다.
1950년 7월 23일 정오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주곡리 마을에 넓게 퍼져 피난하라는 소개명령이 떨어져, 주곡리 마을 주민들은 영동읍 임계리로 피난하게 되고 25일 저녁 주곡리, 임계리 주민, 타지역 주민 500~600명은 미 육군의 유도에 따라 남쪽으로 피난하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당시 미군은 피난민들 중 민간인으로 위장한 북한군들이 다수 숨어있다는 소문 때문에 의심을 품게 되었고, 결국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7월 26일 4번 국도를 통해 황간면 서송원리 부근에 도착한 수백여 명의 일부 피난민은 미 육군의 유도에 따라 국도에서 경부선 철로로 행로를 변경하고 피난을 계속하던 중 갑작스러운 미 공군의 폭격과 기관총 사격에 의해 엄청난 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미군의 공격을 피해 피난민은 노근리에 있는 개근철교(쌍굴) 밑으로 피신하였고, 미 육군은 피신한 쌍굴 밑으로도 26일 오후부터 29일 오전까지 계속해서 기관총 및 박격포 사격을 전개하였다는 참혹한 기록이 남아있죠.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반세기
정말 안타까운 건 이 사건이 1999년 AP통신의 탐사 보도 전까지 한국 외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1999년 9월 29일, 기사 공개를 놓고 1년간의 내부 갈등 끝에, AP통신은 노근리 학살에 대한 탐사 보도 보고서를 발표했고, 이 보고서는 24명의 노근리 생존자들의 증언과 12명의 제7기병연대 참전 용사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이에요. 거의 50년 동안 묻혀있었던 진실이 드러난 거죠.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6.25 전쟁 초반인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 사이에 대한민국 중부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 마을 인근에서 미군의 공중 및 지상 사격으로 대한민국 피난민들이 대규모로 살해된 사건이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의 진상조사에서 163명의 사망 또는 실종자와 55명의 부상자 명단이 확인되었으며, 이 외에 많은 희생자의 이름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노근리평화재단은 사망자 수가 250~300명에 달하며,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추산한다니까, 정말 가슴 아픈 역사예요.
그로부터 51년 후, 희망의 날개를 펼치다
그런데 이토록 아픈 기억과 같은 3월 29일에, 우리나라는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2000년 6월 30일에 기본시설을 준공, 10월부터 2001년 3월 26일까지 공항 운용 테스트를 마치고 2001년 3월 29일 김포국제공항의 국제선 기능을 모두 이관받아 공식 개항했으며, 인천국제공항 개항 당시 첫 이륙 항공편은 오전 6시 30분 대한항공 KE503편 밀라노행 화물기이고, 도착 항공편은 오전 5시 태국 방콕(돈므앙)발 인천행 아시아나항공 OZ3423편이며, 첫 출발편은 오전 8시 30분 인천발 필리핀 마닐라행 대한항공 KE621편이다는 인천국제공항의 개항이었어요.
2001년 오늘, 동북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서 역할을 담당할 인천국제공항이 문을 열었고, 1992년 착공해 8년 4개월 만에 총공사비 7조 8,000억 원을 투입해 완공했으며, 인천국제공항은 연간 17만 번의 항공기 운항을 통해 2,700만 명의 여객과 170만 톤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게 됐다니까, 정말 대단한 성취였죠.
바다를 메워 만든 기적
최적의 공항 부지를 정하고 1992년 부지 조성 공사를 시작으로 공항 건설이 진행되었고, 인천광역시 영종도와 용유도, 신불도, 삼목도 네 섬 사이를 매립하여 부지를 확보하는 것은 곧 우리나라의 지도를 바꿔놓는 일이었으며, 첨단 건축 공법과 정보 통신 시스템을 갖춘 공항 시설을 완성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인원과 장비가 투입됐고, 공사 기간 8년 4개월, 총 공사비 7조8079억 원이 투입된 공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건설 과정을 보면 정말 놀라워요.
'무모하다', '불가능하다'는 우려를 뒤로하고 세계 최대의 해상 공항이자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당당하게 그 위상을 뽐낼 수 있었으며, 전 세계를 향한 하늘길이 열리던 순간, 세계는 대한민국을 주목했고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움으로 빛났다니까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
여러분, 같은 날짜에 이렇게 대조적인 두 역사가 있다는 게 참 의미깊지 않나요? 노근리 사건은 전쟁의 참혹함과 민간인 보호의 중요성을, 인천공항 개항은 평화 시대 우리나라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거든요.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2005년부터 2016년까지 12년 연속 세계 공항 순위 1위를 기록했다는 인천공항의 성과를 보면, 정말 전쟁의 폐허에서 이만큼 발전한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동시에 노근리평화기념관의 관장이자 노근리국제평화 재단의 이사장인 정구도 이사장이 '평화는 절대 공짜가 아니고, 평화만이 인권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며 '많은 인권 침해 사건이 역사적 배경과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와 강제 징용, 위안부 문제가 연결되고, 한국전쟁과 노근리 사건이 연결되죠.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재발됩니다. 노근리 사건 같은 일이 다시 재발하지 않으려면 역사와 인권 교육이 꼭 필요합니다'라고 한 말씀도 깊이 새겨야 할 것 같아요.
3월 29일, 이 날은 우리에게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현재의 성취를 자랑스러워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날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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