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82.4% '시민교육 필요' vs 교사 입 다물게 하는 민원의 벽
교사노동조합연맹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국민 대다수가 학생들의 시민교육을 필요하다고 인식하지만, 정작 교실에서는 정치편향 민원과 신고 위협으로 교사들이 수업을 회피하는 현실이 드러났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원하는 것, 왜 교실에서 외면받을까?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학생에게 현실 정치 쟁점과 사회문제를 다루는 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충격적인 현실이 드러났다. 이는 단순한 설문 결과가 아니라, 우리 사회 교육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정책연구원은 9일 '2026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현실 정치의 쟁점과 사회적 문제를 교육하는 시민교육이 학생들에게 필요하다는 응답은 82.4%였다.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10% 미만에 그쳤다.
더욱 주목할 점은 국민들의 기대가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 같은 내용을 주로 어디에서 배워야 하는지를 묻는 문항에서는 학교라는 응답이 66.4%로 가장 많았고, 가족은 14.6%, TV는 6.3%, 온라인은 5.6%였다. 국민들은 SNS와 온라인 정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학교가 학생들을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깊이 있는 사고를 원하는 교실, 막히는 현실
교사가 수업에서 현실 정치·사회 쟁점을 교육적 소재로 다루는 것에 대해서도 67.4%가 찬성하고 반대는 20.8%였다. 국민의 2/3 이상이 교사의 수업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들이 이를 지지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찬성 이유로는 'SNS·유튜브 등 편향 정보보다 교육적으로 다루는 것이 낫다'가 27.6%로 가장 높았으며,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가 균형 있게 발달할 수 있다(25.4%)', '비판적 사고 능력이 향상된다(24.8%)'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국민들이 시민교육을 특정 이념 주입이 아니라, 편향된 정보의 바다 속에서 학생들의 판단력을 길러주는 방어막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제도적 보호 없이 교사만 고스란히 노출
그런데 교실 현장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교과서와 교육과정에 근거한 역사교육, 사회문제 수업, 계기교육, 혐오표현 지도 등이 정치편향 민원이나 신고 위협으로 이어진 사례가 확인됐고, 민주화운동, 5·18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 세월호 계기교육, 통일·독도 교육, 혐오표현 지도 등도 민원의 대상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더 심각한 것은 민원의 수준이다. 교사의 사생활인 SNS 활동이나 입고 있는 옷 색깔까지 감시당하며 정치적 중립성 위반을 추궁당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이런 환경에서 교사들은 부당한 민원과 신고 위협을 피하기 위해 시사 문제를 아예 회피하거나 교과서만 기계적으로 읽어주는 식의 방어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의 부재가 교사를 좌초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학교 시민교육 수준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66.0%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국민은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실제 교육은 부실하다고 느끼고 있다.
교사노조는 이를 두고 "국민은 학교 시민교육 필요성에 이미 폭넓게 동의하고 있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이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조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교사노조는 "교사가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육하려 할수록 정치편향 민원과 신고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문제"라며 "시민교육을 더 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교육과정에 근거해 말하고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침묵이 답이 아니라, 제도가 필요하다
결국 문제는 간단하다. 국민과 교사 모두 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제도적 공백이 있다. "학교가 침묵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정치·사회적 쟁점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현실 사회의 갈등을 시민교육의 언어로 다루는 학교교육"이라고 교사노조는 덧붙였다.
업계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교육을 바라보는 사회적 성숙도의 문제다. 학부모의 부당한 민원을 원천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 조직 차원의 지원, 무엇보다 정치편향 민원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아무리 강조해도 시민교육의 공백은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시민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러나 그것을 담당할 교사를 보호할 제도가 없다면, 우리는 계속 이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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