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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의 목소리, 제주 바다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다...명진스님 프리다이빙 사고로 입적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이 제주 서귀포 하예포구 인근에서 프리다이빙 연습 중 사고를 당해 입적했습니다. 세수 76세, 법랍 52년의 불교계 개혁자의 갑작스러운 별세입니다.

한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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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돌아간 불교계 개혁자

그때였다. 8월 22일 아침 제주의 바다가 한 사람의 생을 앗아갔다.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이 22일 제주 서귀포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프리다이빙 연습 중 사고를 당해 입적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늘 아래 가장 자유로울 것 같은 파도 위에서 이렇게 생을 마감할 줄은.

세수 76세, 법랍 52년. 한 사람의 삶을 수치로만 표현하기엔 너무 많은 역사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종단을 바꾸겠다"는 외침

명진스님은 단순한 스님이 아니었다.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명진스님은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한 뒤 1974년 탄성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마음먹었다. 불교계를 개혁하겠다고.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을 주도했으며 제11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과 중앙종회 부의장 등을 거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봉은사 주지를 지냈다. 봉은사—서울 강남의 명찰에서, 그는 거침없는 목소리를 높였다.

봉은사 주지 시절 당시 조계종 총무원 지도부와 이명박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이후에도 인터뷰와 법회 등을 통해 총무원 지도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종단의 기득권 세력이 그의 목소리를 좋아할 리 없었다.

징계와 법정투쟁

갈등은 커져만 갔다.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등을 둘러싸고 총무원과 갈등을 빚었던 명진스님은 2017년 승적 박탈 징계를 받았다. 10년을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법정에서 그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역사는 웃었다. 이후 명진스님이 낸 징계 무효 소송에서 1·2심 재판부 모두 스님 손을 들어줬다. 올해 초 조계종과 명진스님이 서로 대법원 상고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사안이 일단락되고 승적이 회복된 상태다. 명예가 회복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몇 개월이었다.

제주 바다에서의 마지막 호흡

22일 대한불교조계종과 경찰·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명진스님은 이날 오전 9시38분께 제주 서귀포시 하예동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물에 떠 있는 상태로 구조됐다. 조금 늦었다. 시간이 몇 분 더 있었다면, 어쩌면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스님은 이날 오전 9시38분 제주 서귀포시 하예동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물에 떠 있는 채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전 10시28분께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명진스님의 수행은 끝이 났다.

프리다이빙—산소 탱크 없이 자신의 호흡으로 물속 세계를 누비는 행위. 스님이 선택한 수행 방식이었다. 칠십을 넘긴 나이에도 제주 바다에서 매년 몇 개월씩 이 운동을 이어갔다는 그의 삶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한 시대의 종말

이번 사고로 종단과 사회를 향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명진스님의 50여년 수행과 사회활동도 제주에서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게 됐다. 마치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이.

불교계 개혁의 전면에 섰던 스님의 목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다. 남은 것은 그가 남긴 외침—더 나은 종단, 더 투명한 신앙에 대한 열망뿐이다. 그리고 제주 바다의 파도 위에서 홀로 물에 떠 있던 그의 마지막 모습.

해경은 구조 당시 착용한 장비 등으로 미뤄 프리다이빙 연습 도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기자 한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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