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40원 돌파, 17년 만의 최고…당국 '즉시 개입' 외쳤지만 멈추지 않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1540원을 돌파하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외환당국의 경고에도 환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1500원대 고착화를 우려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역사를 지우다
원·달러 환율이 결국 장중 1540원을 돌파했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2009년 3월 10일 장중 1561.0원 이후 17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 경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외환 시장에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필자는 이 상황이 단순한 숫자 변화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신호라고 본다.
단순한 통과 의례일까? 아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3원 오른 1529.7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주간 거래 종가로는 지난 3월 31일 1530.1원 이후 두 달여 만의 최고치다. 더 놀라운 것은 지속성이다. 특히 13거래일 연속 1500원대에 머물며 금융위기 당시 연속 기록도 넘어섰다. 일시적 변동이 아니라 새로운 '상식'이 되고 있는 것 아닐까.
시장 전문가들이 내놓는 분석도 심각하다. 시장에서는 1500원대가 일시적 급등 구간이 아닌 새로운 환율 레벨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 위기 때만 봐야 하는 환율이 일상이 된다는 뜻이다.
당국의 '말발'은 왜 안 먹혔을까
정부도 구두개입 수위를 높였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불안 심리가 확산하지 않도록 높은 경계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과도한 쏠림에는 필요한 조치를 즉시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시'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정했다. 구 부총리 발언 이후 주간 거래에서 환율은 한때 1520원대 초반까지 밀렸지만 다시 상승 폭을 키우며 1520원대 후반에서 마감한 뒤 야간 거래에서는 오히려 1540원대까지 치솟았다. 당국의 경고는 고기 귀신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삼중고(三重苦)에 갇힌 원화
원화가 이토록 약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강달러와 외국인 자금 이탈이 겹친데 따른 것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문가들의 진단이 직설적이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5월 초부터 전쟁 장기화에 따른 강달러 및 글로벌 금리 상승, 외국인 국내증시 매도에 환율 상방 압력이 높은 국면에서 관세 리스크가 더해졌다"며 "전쟁 이후 도달했던 전고점 1536원을 역외 장중 터치한 가운데 현재 레벨에서는 다음 상단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악재가 일제히 한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뜻이다. 안전자산 선호로 달러가 강해지고, 동시에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팔아치우며, 여기에 관세 불확실성까지 겹치는 '완벽한 스톰'인 셈이다.
당신의 지갑에 다가올 영향
환율 급등의 파장은 숫자 너머에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고물가 국면을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유가와 고환율로 수입물가가 오르면 생산자물가를 밀어 올리고, 이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해외 출장을 가든 수입 식품을 사든, 누구나 이 파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수출 기업들은 오히려 이 상황에서 이익을 본다. 하지만 대다수 일반인, 그리고 원자재 수입 기업들은 약자의 자리에 내몰린다. 이것이 필자가 이 뉴스를 주목하는 이유다. 환율은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길은
시장에서는 1500원대가 일시적 급등 구간이 아닌 새로운 환율 레벨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혹시 이것이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되는 건 아닐까?
중동 상황과 글로벌 금리 흐름, 그리고 외국인 자금의 향방이 앞으로의 환율을 결정할 것이다. 당국의 '즉시 개입'이라는 말이 공염불이 되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 경제가 이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당국이 할 수 있는 것과 시장이 원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박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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